[이슈추적]'윤락사범수사' 법조-여성계 이견 팽팽

  • 입력 2001년 5월 13일 18시 53분


특정 기간에 특정 윤락업소를 이용한 남성 전원을 수사하는 것은 타당한 일인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과잉수사’나 ‘표적수사’가 아닌가.

경남 창원중부경찰서가 호텔 스포츠 마사지 업소에서 여종업원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가 있는 140명의 명단을 확보해 무차별 조사중인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당사자들과 법조계 일부 등에서는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주장인 반면 여성계는 성매매(윤락)행위 근절차원에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기색이다.

▽경찰 단속〓창원중부경찰서는 6일 밤 창원시내 모 호텔 스포츠 마사지 업소에 대해 전격 단속을 벌여 윤락녀 5명을 체포하고 지난달 7일부터 29일까지 이 업소를 이용한 남성들의 신용카드 결제전표를 압수했다.

경찰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뒤 카드사를 통해 의사와 기업체 임원 등이 포함된 고객 140여명의 명단을 입수했다. 경찰은 이어 일주일 동안 연인원 300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이들을 불러 조사했다.

해외출장 중이거나 개인적인 사유로 아직 나오지 않은 20여명도 모두 소환한다는 방침. 이처럼 전례 없이 강경한 경찰의 수사 사실이 알려지자 창원에서는 “나 떨고 있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로 지역사회의 큰 관심사가 됐다.

소환된 남성들은 대부분 윤락사실을 시인하면서 비밀에 부쳐줄 것을 경찰관들에게 애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술에 취해 잠을 잤다”거나 “마사지만 받았다”고 끝까지 버텼다.

▽경찰 입장〓경찰은 ‘160만원의 월급을 받는 남편이 스포츠 마사지 클럽에 드나들어 생활이 어렵다’는 한 주부의 인터넷 민원이 수사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고 밝히고 있다.

또 매춘은 명백한 범법행위이며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상대 남자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소환조사는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11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원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하고 출석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겠다”고까지 엄포를 놨다.

그러나 평상시 대개의 경우 이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의 경우도 현금결제자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이 일자 이들을 입건하지 않는 쪽으로 내부방침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당성 논란〓경찰에 불려갔던 A씨(29)는 “개인의 사생활인데다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춰내고 소환까지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신용카드 거래내용의 추적도 불쾌하다”고 털어놨다.

회사원 B씨(38)도 “현행범이 아닌데다 ‘관계’를 했다는 확증도 없는 상태에서 카드결제자 모두를 범죄인 취급하는 수사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의 C변호사는 “수사는 국민에 대한 권리와 이익을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윤락업주 처벌의 근거자료를 확보한다는 명분은 있으나 합리성이 결여된 과잉수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판사를 지낸 D변호사도 “적법성을 갖췄다 해도 가벌성(可罰性)이 낮은 사안에 대해 무더기 소환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여성계의 입장은 단호하다. ‘창원 여성의 전화’ 이경희(李京禧·53)회장은 “어떤 이유로도 여성의 성상품화는 용납될 수 없다”며 “남성에게는 일정한 ‘배출구’가 필요하다는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성매매를 용인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경남여성회 이경숙(李炅淑·52)회장도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근절돼야 한다”며 “사회 지도층일수록 법적용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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