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늘어나는 소비자 파산 "빚막기도 지쳤어요"

  • 입력 2001년 2월 26일 18시 40분


최근 ‘소비자 파산’을 신청한 김모씨(45)는 친구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다가 97년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 직후 부도를 냈고 친구는 중국으로 도망을 갔다.

친구 몫의 빚까지 갚아야 했던 김씨는 설상가상으로 간염까지 걸려 한 달에 100만원이나 드는 치료비를 신용카드 대출금으로 해결해 오다 결국 파산의 길을 택했다.

25일 서울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명이던 소비자 파산 신청자가 올해 1월 13명으로, 이달 들어서는 현재까지 12명으로 늘었다.

매월 20건 이상의 신청이 들어왔던 99년보다는 적은 숫자지만 파산부 판사들은 지금같은 경제 상황이 계속될 경우 머지않아 99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더구나 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은행들은 가계대출을 대폭 늘리고 있다. 개인들의 신용카드 사용 액수 역시 늘어나기만 한다. 모두 대량 소비자 파산(개인파산)의 조짐들이다.

소비자 파산이란 신용카드 대금이나 은행 등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 개인이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받아 채권자들에게 빚잔치를 한 뒤 갚지 못한 빚을 탕감받는 제도.

이달에 파산을 신청한 이모씨(66)는 사기를 당한 경우. 이씨는 25년 동안 운영해 오던 학원을 지난해 판 뒤 그 돈을 99년 알고 지내던 박모씨에게 넘겼다.

박씨는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벌어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돈을 가지고 달아났다. 이후 이씨는 신용카드 4개를 이용해 생활비를 조달하다 6900만원의 빚을 지게 된 것.

이들처럼 소비자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은행과 신용카드회사에 진 빚이나 사채를 갚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원인은 회사부도나 빚보증, 사기 등이다.

대법원의 관계자는 “빚을 진 사람은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먼저 진 빚을 갚다가 최후의 순간에 법원에 오기 때문에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가계대출로 빚을 진 사람들이 올 연말이후 대량으로 소비자 파산 신청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파산을 신청하려면 자신의 진술서와 채권자 일람표, 재산목록, 현재의 생활상황 등을 신청서에 기재해 거주지역 관할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를 접수한 법원은 서류를 심리해 실제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파산을 선고하고 남은 재산은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한다. 파산선고를 받으면 법적 ‘파산자’가 돼 금융기관과의 거래와 취직 등에 제약을 받아 공무원 변호사 기업체 이사 등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파산선고 이후 법원에 ‘면책’을 신청해 받아들여지면 모든 불이익을 면제받을 수 있고 이후 빚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새 출발이 가능하다. 물론 재산을 숨겨놓고 거짓으로 파산을 신청했거나 낭비 또는 도박 때문에 빚을 진 경우, 지급불능상태임을 알고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했다면 면책이 되지 않는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지법이 처리한 사건은 모두 179건으로 이중 88건에 대해 파산선고가 내려져 인용률은 49%였으며 이중 54%인 48건에 대해 면책 결정이 내려졌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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