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형근/'제주도 영어공용화' 설득력없다

  • 입력 2001년 7월 3일 18시 26분


세계화가 계속 진전되면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과도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져서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때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단연 영어가 가장 많이 이용될 것이다.

필자는 유년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20여년을 제주도 서귀포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몰랐던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고향을 떠난 지금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에 대해 어느 정도 낭만적인 기분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 진행되고 있는 제주도 영어공용화 논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국제적 관광지가 되려면 영어를 공용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따진다면 영어를 공용화해야 할 곳은 서울이다. 정책 입안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이야말로 영어공용화가 너무나 필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영어공용화론자들의 주장을 옮기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은 왜 못살고 영어 못하기로 유명한 일본은 어떻게 경제대국이 됐느냐고 묻고 싶지도 않다. 제주도 주민이 영어를 잘하고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면 제주도가 저절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제도시가 되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대답을 듣고 싶다.

제주지역의 영어공용화 주장은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검토하는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정책 담당자들이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서귀포 천지연의 뱀장어들은 폐수 때문에 죽지 않았는지,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냄새가 안나는지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영어가 통하면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통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방문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다. 또한 제주도는 국제상업도시가 아니다. 관광지일 뿐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그리고 TV 등 각종매체를 통해 이뤄지는 영어교육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는 제주도를 이대로 놔두자. 그냥 놔두고 제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제주도가 발전하고 영원히 살 길이다.

김형근(마스터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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