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리는 오바마의 미국]<3>인종간 세대간 정파간 화합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2분


벽허문 포용 인사… 취임후 ‘통합 USA’ 큰그림 기대 고조

경선 라이벌-공화당 인사도 입각

신구-흑백 넘어 화합메시지 던져

“하나의 미국 새시대 이끌 적임자”

“이제 우리에게 ‘과거’는 ‘어제의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미국 뉴욕 감리교회 패트릭 애덤스 목사)

2009년이 시작된 1일 0시 워싱턴 뉴욕 애틀랜타 등 미국 대도시 흑인 교회에선 일제히 ‘워치 나이트(Watch Night)’ 예배가 열렸다. ‘프리덤 이브(Freedom Eve)’라고도 불리는 워치 나이트는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서명을 기념해 매년 12월 31일 밤 흑인들이 동네 교회에 모여 자정 예배를 드려온 오랜 관습이다.

올해 워치 나이트는 대성황이었다. 대부분 만석이었고, 주요 흑인 교회 주변은 심야 교통체증을 빚을 정도였다.

교회마다 설교와 기도에서 빠지지 않은 주제는 버락 오바마 시대 개막에 대한 기대와 축복, 성공 기원이었다. 예배 후 닭고기, 미트볼, 샐러드 등을 나눠 먹으며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화제는 단연 ‘오바마’였다.

“그냥 무작정 눈물이 난다. 카타르시스 같은 거다. 내 나이 67세다. 오로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길까 봐 두려움에 떨던 시절도 겪었다. 하지만 이젠 2등 시민으로 살았던 시절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세라 오베이 씨·여·시카고 거주)

“노예해방 이후 계속된 수많은 사람의 기도가 응답을 받은 것이다.”(케이넌 레베카 씨·57·워싱턴 거주)

사춘기 시절, 피부색에 따라 어울리는 그룹이 따로 형성되는 ‘이상한 세상’에 눈을 뜨며 처절하게 방황했던 소년은 이제 2주 후면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인종의 용광로에 불을 지필 ‘대제사장(大祭司長)’이 되는 것이다.

새해 첫 주말인 3일 뉴욕 할렘 거리에서 모자와 시계를 팔던 톰 윌리엄스(34) 씨는 “흑인 가족이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는 걸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외출한 앤절라 킹(42·여) 씨는 “대선날 밤 CNN에서 ‘오바마 당선 확정’ 자막이 나오는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그의 취임만으로도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할렘 거리를 달리는 상당수 차량엔 여전히 ‘오바마 2008’ 등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통합의 새 시대에 대한 기대는 백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시카고 거리에서 만난 아일린 모리스(63·여) 씨 부부는 “정말이지 내 눈에는 그의 피부색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우리 부부는 언제부턴가 오바마의 말을 들으면서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론 오바마 시대 개막이 곧바로 인종문제의 해결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흑인 사회에 만연한 빈곤, 범죄의 악순환 고리는 누구도 쉽게 해결하기 힘들다. 지난주 발표된 노스이스턴대 연구팀 조사 결과 미국 전체적으로는 살인사건이 줄어들고 있지만 흑인 남자가 관련된 살인 사건은 지난 7년간 30% 이상 증가했다.

오바마 정부는 인종뿐만 아니라 세대와 이념의 용광로가 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1961년생인 오바마 당선인은 X세대(1960년대 초반 이후 출생 세대)의 선두주자이며, 그를 당선시킨 견인차는 20∼40대 젊은층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 행정부 인선에서 실무급엔 젊은 참모를 등용하면서도 책임자급 자리엔 50대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 인사를 대거 기용해 신구(新舊)세대 간 통합의 묘를 발휘했다. 특히 외교안보 진용은 국무장관(62세) 국방장관(66세) 국가안보보좌관(66세) 국가정보국장(62세) 등 주요 직책을 모두 60대 인사가 차지했다.

대선 승리 후 포용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오바마 당선인은 경선 라이벌은 물론이고 공화당 인사까지 끌어안았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했을 뿐 아니라 전형적인 공화당맨인 로버츠 게이츠 국방장관도 유임시켰다. 분열된 미국 정치를 화합으로 이끌겠다는 이 같은 인선작업은 ‘화합의 시대’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 지지 풀뿌리 운동을 벌였던 뉴욕뉴저지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은 “오바마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분열된 인종, 분열된 세대, 분열된 이념의 어느 한쪽에 깃발을 꽂는 대신 인종 간, 세대 간, 이념 간의 공통분모에 호소하면서 통합을 강조한 덕분임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시카고=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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