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도쿄]열도 애태운 ‘마지막 라면’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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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라면의 일종인 ‘쓰케멘’의 원조 야마기시 가즈오 씨가 자신의 가게 ‘다이쇼켄’ 앞에서 보도진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일본 라면의 일종인 ‘쓰케멘’의 원조 야마기시 가즈오 씨가 자신의 가게 ‘다이쇼켄’ 앞에서 보도진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20일 문을 닫은 도쿄(東京)의 한 라면 가게 앞에 400명이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카메라를 30대나 동원한 TV방송국들은 헬리콥터까지 띄워 이 장면을 안방에 숨 가쁘게 실어 날랐다.

이날 소동의 무대는 일본 라면의 일종인 ‘쓰케멘’을 처음 고안한 야마기시 가즈오(山岸一雄·72) 씨의 가게 ‘다이쇼켄’.

온 열도를 떠들썩하게 한 다이쇼켄의 폐점 단막극은 철야 채비를 한 손님이 한두 명씩 가게 앞에 모습을 나타낸 19일 오후 10시경 시작됐다.

체감온도가 1도까지 떨어진 추위 속에서 꼬박 밤을 새운 인원은 30명. 오전 6시경 100명을 넘어선 행렬은 개점 1시간 전인 오전 9시 20분 400명으로 늘어났다.

혼슈(本州) 북단 아오모리(靑森) 현에 사는 한 20대 여성은 19일 오후 8시발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해 5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오후 1시 반 좌석이 16개뿐인 좁은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는 데 성공했다. 그가 아오모리를 떠나 쫄깃쫄깃한 면발을 맛보기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17시간 반.

주변 일대의 재개발 계획 때문에 이날 문을 닫은 다이쇼켄은 평소에도 100여 m씩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맛도 맛이지만 걸쭉한 라면국물보다 진한 야마기시 씨의 인간미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일기일회(一期一會·다도에서 나온 말로 사람을 대할 때는 그 기회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성의를 다하라는 뜻)가 좌우명인 야마기시 씨가 쓰케멘을 처음 고안한 것은 다른 라면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1955년.

종업원들이 하루 일을 끝낸 뒤 남은 재료를 모아 아무렇게나 먹던 ‘쓰케멘의 전신’에 한 손님이 관심을 보이자 정식 메뉴로 개발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야마기시 씨는 1961년 독립해 다이쇼켄을 개점했으나 함께 일하던 부인이 1986년 위암으로 세상을 뜨자 충격에 못 이겨 문을 닫았다.

7개월 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던 야마기시 씨를 조리대 앞에 다시 불러 세운 것은 그가 가게 문 앞에 걸어 놓은 휴점 안내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가게를 찾은 그는 휴점 안내문 여백에 빼곡히 쓰여 있는 메모 30개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시 맛있는 라면을 먹게 해 주세요’ ‘오사카(大阪)에서 왔습니다’ ‘빨리 기운 회복하세요’….

고객의 사랑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가게 문을 다시 열었다. 2004년 폐기종으로 장기 입원을 한 뒤로는 직접 조리대 앞에 설 수 없게 됐으나 야마기시 씨는 문을 닫는 마지막 날까지 가게에서 먹고 자며 제자들을 지도했다.

쓰케멘 제조법은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한 야마기시 씨에게는 제자가 많다. 그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이 차린 가게만도 일본 전역과 하와이에 걸쳐 100여 곳에 이른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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