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찰스 로시/술자리 좋지만 가정도 챙겨야죠

  • 입력 2001년 7월 24일 18시 19분


한국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나와 내 가족은 남아프리카 이외의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문화적인 차이도 크지만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언어 문제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외국으로 옮기면 적어도 6개월 동안은 문화적 충격 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한국에서 알게 된 친구들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은 따뜻하고 친밀하며 이방인인 우리 가족을 세밀하게 보살펴 주었다.

한국 사람이 좋아지다 보니 음식도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 백반이며 그 외에 양념갈비, 불고기, 백김치와 만두를 좋아한다. 특히 가끔 퇴근 후 거래선의 고객이나 직원들과 소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무척 즐겁다. 한 잔 하면서 고객이나 직원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회적인 만남의 장은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웠다. 비록 많은 술로 인해 다음날 아침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며칠 후면 다시 정겨운 얼굴들과 '원 샷' 을 외치게 된다. 딱딱한 마루 바닥에 앉아서 오랜 시간 술을 마시다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자리의 소중함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이런 방식의 술자리는 단순히 술만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인 것 같다. 술을 마시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회사에 관한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유대감을 다져간다. 골프도 한국에서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사회적인 만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접대성 골프' , '접대성 술자리' 라는 말은 이래서 생겨난 것 같다. 술 깨는 약이 있다는 사실도 한국에 와서 처음 알았다.

술이나 골프를 일과 사회활동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업무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이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나 인생을 즐긴다는 것,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 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기업에서도 술 접대나 술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서양과는 달리 여성들이 요직에 오르기가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느낀 점은 무척 근면하고 창의적이고 지적이며 프로정신에 투철하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일할 때는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를 부탁하면 최소한 하루 이상 걸리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체크해야 했는데, 한국의 동료들은 한 번 말을 하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빠른 시간 내에 다양한 비교와 함께 보고서를 만들어낸다.

휴가철에 본국에 돌아가면 나와 가족이 그리워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생각나는 것은 안전한 생활 환경과 훌륭한 대중교통 시스템, 그리고 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시스템과 한국인 친구들이다. 반면에 서울의 명동거리나 사람이 북적대는 지역의 복잡함과 교통체증, 대기오염 등은 잊고 싶은 것들이다.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지 1년이 돼 가고 한국의 여러 곳을 돌아보았지만 아직도 보고 느끼고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오래 한국에 머물면서 따뜻한 정과 문화, 그리고 언어를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약력: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생해 남아프리카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83년 대학을 졸업한 뒤 코카콜라사에 입사해 영업 업무를 시작으로 남아공에 있는 여러 코카콜라 보틀링회사에서 근무했다. 1999년 한국에 오기 전에는 남아공 최대의 코카콜라 보틀링 회사에서 사장으로 근무했다.

찰스 로시(한국 코카콜라보틀링 영업담당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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