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수입차 24만대 시대와 폴크스바겐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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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산업부 차장
주성원 산업부 차장
지난해 9월, 2015년 상반기 판매 세계 1위를 질주하던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이 디젤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파문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까다로운 미국의 환경기준에 맞추면서, 동시에 연료소비효율과 엔진 성능까지 잡으려던 폴크스바겐의 해결책은 ‘사기(詐欺)’였다. 비난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졌다.

폴크스바겐 사건이 다시 세간의 화제에 오른 것은 올 초 미국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다. 미국 법무부는 폴크스바겐이 청정공기법을 위반했다며 자동차 산업 사상 최대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주요 언론들은 폴크스바겐이 190억 달러(약 22조8000억 원·뉴욕타임스)에서 900억 달러(약 108조 원·로이터통신)까지 벌금을 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의식했던 것일까.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10일(현지 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 공장에 9억 달러(약 1조8000억 원)를 투자해 일자리 2000개를 신설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이런 저자세 행보와 달리, 한국에서 폴크스바겐은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폴크스바겐의 한국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사과와 리콜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사건 이후 18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보상 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각종 프로모션을 통한 ‘떨이 판매’로 판매량을 늘렸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은 전년보다 16% 늘어난 3만5778대를 팔았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판매가 줄었는데 한국에서는 더 팔렸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손해를 일부나마 한국에서 만회한 셈이다.

폴크스바겐이 한국 시장을 ‘봉’으로 본 것은 정부와 소비자 때문이기도 하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는 폴크스바겐 구형엔진 차종에 대한 판매정지와 리콜 명령, 과징금 141억 원이 전부다. 현재는 정기검사에 질소산화물 항목이 없어 리콜을 받지 않는 운전자를 강제할 수단도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제조사의 윤리 문제와 상관없이 파격적인 할인 폭에만 눈을 돌렸다.

미국이 폴크스바겐의 조작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수입차 차별’ 때문이 아니다. 지금은 중국에 밀렸지만, 미국은 오랜 기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의 위상을 지켜온 곳이다. 이 시장을 두고 자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치열하게, 그러나 공정하게 경쟁을 벌여왔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국적이 아닌 가격과 품질, 서비스로 제품을 선택해왔다. 이런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 중 하나가 반칙을 범한 격이다. 이것이 ‘분노’의 이유다.

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수입차(승용차)는 24만3900대. 전체 판매된 승용차 157만676대의 15.5%를 차지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수입차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17.5%까지 오른다.

수입차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시장조사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최근 조사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수입차보다 국산차를 타는 것이 보기 좋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47.4%)는 응답이 ‘동의한다’(40.9%)는 응답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도 국산차와 수입차의 구분이 무의미해 보인다.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차별 없는 경쟁을 원한다면, 다른 국내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제 주체로서 사회에 기여할 책임도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4년 매출 2조6619억 원, 영업이익 547억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 회사가 사회공헌활동격인 기부금으로 지출한 돈은 2억120만 원에 불과하다. 매출의 1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폴크스바겐 또는 일부 수입차 업체들이 아직도 한국을 그저 ‘쉬운 시장’으로만 바라본다고 생각하게 하는 근거다.

정당한 방법으로 영리행위를 하는 기업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명한 정부, 현명한 소비자라면 결여된 윤리 의식과 환경 의식, 부족한 사회 기여가 올바른 기업의 영리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판단하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폴크스바겐이지만 언제 또 비슷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 ‘국제 표준’을 밑도는 ‘물렁한 대응’의 부메랑은 결국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 성숙한 시장은 공정한 경쟁과 냉정한 대응이 함께 만든다. 자동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
#수입차#폴크스바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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