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옷으로만 매출 1조원… 수출에도 옷이 날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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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실업-영원무역-신성통상-세아상역… OEM업체들의 새로운 도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세실업 연구개발(R&D)센터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위 사진). 이들은 고객사보다 한발 앞서 패션 트렌드를 연구하고 소재와 디자인을 개발한다. 세계 패션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의류 제조업체들은 올해 더욱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래 사진은 한세실업의 베트남 공장. 변영욱 기자 cut@donga.com·한세실업 제공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세실업 연구개발(R&D)센터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위 사진). 이들은 고객사보다 한발 앞서 패션 트렌드를 연구하고 소재와 디자인을 개발한다. 세계 패션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의류 제조업체들은 올해 더욱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래 사진은 한세실업의 베트남 공장. 변영욱 기자 cut@donga.com·한세실업 제공
“봉제업이 사양산업이라고요? 30년째 적자가 없었어요. 새해에는 한국 회사들이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고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겁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무실에서 만난 한세실업 창업주 김동녕 회장의 얼굴은 밝았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인 한세실업은 창업 30주년인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세계 경기 침체로 타깃, 갭, H&M 등 해외 패션업체들이 주문량을 늘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올해 실적을 낙관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글로벌 패션업체들이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우수한 협력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우리처럼 디자인과 연구개발(R&D)에 힘쓴 한국 회사들에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오고 있다”며 “우리 R&D센터에선 국내외 최고 인재들이 모여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한국 의류 제조업체들의 실적은 눈부셨다. 한세실업뿐 아니라 아웃도어 의류가 강점인 영원무역도 의류 OEM만으로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한세실업 영원무역 외에도 신성통상 세아상역 등 한국의 의류 OEM업체들은 묵묵히 의류 수출 한길을 걸어왔다. 이들은 1970, 80년대 임금 경쟁력을 앞세워 창업했고 1990년대에 해외 생산을 통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제 디자인과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매출 1조 원의 제조업 거인(巨人)으로 성장하고 있다.

○ 세계로 도약하는 한국 의류 OEM

한세실업은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을 만드는 미국 리미티드, 캐주얼 브랜드 갭과 20년 넘게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2002년 당시 ‘미국인 9명 중 1명은 한세실업 옷을 입는다’로 시작한 광고문구는 2006년부터 ‘3명 중 1명’으로 바뀌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이제 ‘2명 중 1명’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영원무역은 세계시장에서 판매되는 ‘노스페이스’ 의류의 40%를 만든다.

한세실업은 1982년, 영원무역은 1974년 설립됐다. 두 회사의 창업자인 김 회장과 성기학 회장은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일찍부터 수출에 뜻을 품었다. ‘한세’라는 이름은 ‘한국과 세계를 잇는다’는 뜻으로 김 회장이 직접 지었다.

신성통상과 세아상역도 자체 패션 브랜드 매출을 합쳐 일찌감치 1조 클럽에 가입했다. 2011년 매출이 각각 1조1000억 원(관계사 포함), 1조5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1위 패션업체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2011년 매출이 1조6000억 원임을 감안하면 의류를 납품하는 한국 OEM업체들의 규모는 놀랄 만하다.

한국 의류제조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OEM 분야에서 최근 새로 창업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학생복업체인 에리트베이직은 2010년 인도네시아에 의류 생산업체 ‘P. T. 에리트’를 세우고 ‘망고’ ‘자라’ ‘포에버21’ 등 브랜드의 옷을 만들고 있다.
▼ R&D-디자인 투자 ‘의류계 삼성’ ▼

○ 디자인과 R&D로 승부한다

한세실업 서울 R&D센터에는 평범한 체형에서 배만 나온 체형, 살찐 체형까지 다양한 형태의 마네킹 80여 개가 있다. 직원들의 책상 사이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고객들의 체형과 선호하는 디자인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김상률 경영기획팀장은 “뉴욕과 서울 디자인센터에 미국 파슨스, 이탈리아 마랑고니 같은 해외 명문 디자인학교 출신을 포함한 50여 명이 연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며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패션 트렌드를 수집하는 회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의류 제조업의 경쟁력은 디자인과 R&D 투자에 있다. 중국계 회사들이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출 때 한국 업체들은 미국 뉴욕 등 패션 중심지에 디자인센터를 세우며 단순 OEM에서 제조자설계생산(ODM)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객사가 요청하기 전에 자체 개발한 원단과 디자인을 제안해 생산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무역은 미국 시애틀과 스위스 베른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발 빠르게 현지 패션브랜드의 수요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다. 해외 공장을 거의 100% 직영으로 운영하며 품질 관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올해 400억 원을 들여 대구 R&D센터를 증축하고 8월에는 경기 양주시에 신소재개발센터를 완공할 예정이다.

신성통상은 첨단 신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2011년 12월 한국섬유소재연구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매년 약 3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은 “100가지 이상의 친환경 소재를 포함해 총 300여 가지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며 “최근에는 운동할 때 편하고 땀 흡수도 잘되는 액티브 라인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격적인 투자 나설 것”

한국 의류 OEM업계는 올해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패션브랜드들의 ‘탈(脫)중국’ 움직임 덕분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장이 몰려 있는 중국 동부 연안의 임금이 치솟으면서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를 포함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한국 의류업체로 물량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대미 의류 수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반면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는 각각 대미 의류 수출국 2, 3, 4위에 오르며 꾸준히 수출 물량을 늘리고 있다.

한국 업계는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최근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세아상역은 지난해 아이티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미국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의류업체 중 가장 먼저 2011년 미얀마에 공장을 세운 신성통상의 염 회장은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최소한 의류 분야에선 이제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세실업 김 회장은 “미얀마나 베트남에 새 공장을 짓기 위해 터를 알아보고 있다”며 “한국 의류업체들이 올해 세계 시장에서 영토를 더욱 넓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수·염희진 기자 kimhs@donga.com
#OEM#한세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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