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으로 취업뚫기]현대백화점 미아점 허미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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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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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난 직원이라고 생각
9년전 구입해 간 구두 수선 의뢰
고객 회사까지 찾아가 전달”

디카 들고 매장 구석구석 훑고
옥상공원 이용한 이벤트 기획
“입사 첫해 3관왕 먹었어요”

현대백화점 인턴 과정을 거쳐 취업까지 성공한 허미란 씨가 23일 자신이 근무하는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현대백화점 인턴 과정을 거쳐 취업까지 성공한 허미란 씨가 23일 자신이 근무하는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학점은 4.5점 만점에 3.96점(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88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은 다 넘는다는 4점도 채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남들은 950점 이상, 최소 900점 이상 받는다는 토익 점수도 840점에 불과한 허미란 씨(24). 이런 허 씨는 지금 현대백화점이 가장 주목하는 주니어 직원 가운데 한 명이다. 눈에 띄는 적응력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입사 1년 만에 현대백화점 전체에 이름을 알린 것.

옷을 좋아해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던 허 씨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것은 현대백화점이 2008년 시범 도입한 인턴 제도다. 서류만으로는 ‘변변찮은’ 허 씨는 2008년 여름 5주 동안 인턴을 거치면서 그의 장점을 현대백화점에 각인시켰고, 그해 12월 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 인턴 기간에 이미 ‘허 주임’으로 불려


인턴 기간에 허 씨를 담당한 현대백화점 직원들은 공채에 도전한 허 씨의 합격을 기정사실화할 정도였다. 인턴을 거치면서 붙은 허 씨의 별명이 정규 직원들을 부르는 호칭인 ‘허 주임’이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여성캐주얼팀에서 일하던 허 씨는 백화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옥상공원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어린이 골프대회’를 생각해 냈다. 그는 “본점의 옥상공원은 잔디와 나무가 조화를 이룬 최고의 시설”이라며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인턴들에게 과제가 주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모든 작업을 허 씨 스스로 했다는 것. 그리고 허 씨의 이 보고서는 그대로 기획팀에 전해져 2008년 9월 실제 이벤트로 현실화됐다.

‘허 주임’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틈틈이 남는 시간을 이용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고객의 눈으로 압구정본점 곳곳을 촬영했다. 매장 여기저기 숨겨진 노후 시설, 안전위험 시설, 불편 시설 등이 그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것 역시 ‘환경 개선 보고서’로 만들어져 고참 선배들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고객의 불만사항을 마치 ‘내 일’처럼 처리한 일은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한 고객이 9년 전 백화점에서 구입한 구두의 수선을 의뢰했는데 담당 직원이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 다른 사람이라면 전화로 처리할 일을 허 씨는 고객의 회사까지 직접 찾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는 “백화점 직원들에게 ‘고객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자’는 말은 늘 듣는 말이지만, 그날 이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허 씨는 또 “인턴이 스스로를 인턴이라고 생각해 한계를 설정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며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턴은 그냥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면 엄청난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게 허 씨의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옷을 유난히 좋아했던 허 씨는 성균관대 의상학과에 진학했고, 백화점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은 대학 2학년 때부터 했다. 인턴을 거쳐 백화점에 취업해야겠다는 로드맵도 이 무렵 정했다. 그는 “인턴 자리는 아무에게나 그냥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니다”며 “인턴에 합격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류 가운데서도 청바지를 가장 좋아하는 허 씨는 유명 청바지 브랜드의 모니터요원으로 활동하며 꿈을 이루기 위한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백화점에 있는 이 브랜드 매장에 손님을 가장해 들어간 뒤 불편 사항 등을 점검하는 일이다. 이 일을 통해 백화점과 브랜드의 관계 등 의류 유통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1년 가까이 동대문 종합의류쇼핑몰 ‘두타’의 객원 마케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각종 의류 시장조사는 물론이고 두타가 진행하는 직매입 브랜드 론칭에도 참여하면서 최근 백화점들이 강화하는 직매입 시스템을 미리 공부할 수 있었다. 당시 두타의 객원 마케터 기간은 6개월이었지만 허 씨의 성과를 인정한 두타 측의 제안으로 3개월 연장해 활동하기도 했다.

허 씨는 두타의 객원 마케터 활동으로 받은 수당을 모아 혼자 일본 이세탄백화점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백화점보다 앞서 있는 의류 직매입과 편집 매장 운영 현황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학교 공부만으론 배울 수 없는 허 씨의 이 같은 노력은 학점이나 토익, 자격증 면에서 다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도 남았다. 허 씨는 현대백화점 인턴사원에 지원해 4.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 신입사원 최초 3관왕 달성

그의 명성은 ‘똑똑한 인턴’으로 끝나지 않았다. 현재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핸드백, 액세서리 등 잡화 브랜드 50여 개를 관리하는 그는 올해 상반기에 ‘현대백화점 3관왕’을 달성했다. △행사매출 콘테스트 1위 △고객응대 서비스 1위 △업무 혁신 부문 1위를 차지한 것. 이제 갓 입사한 사원이 이런 성과를 이뤄낸 것은 현대백화점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허 씨의 사례를 경험한 현대백화점 측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배워 조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 채용부터 인턴십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채용 담당자는 “서류상으론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적극성과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오히려 ‘점수’보다는 ‘경험’이 좋은 평가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 인사담당자가 말하는 인턴십 :

▽좋은 예-회사를 면접하라
내 열정과 젊음을 바쳐도 후회가 없을 그런 회사를 찾는다는 심정, 즉 내가 회사를 면접한다는 생각으로 인턴에 임하는 것이 좋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기본이며 회사에 대한 지식과 애착을 갖고 “나는 인턴이 아니라 이 회사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쁜 예-과대포장
인턴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는 ‘진짜 인재’를 찾는 것이다. 기존의 채용제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 하는 것이 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턴기간에 자신을 평가하는 담당자 앞에서만 좋은 모습을 보이고 동료나 협력 사원 앞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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