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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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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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요리해주는 맛에 휴가 떠나요”

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가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요리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화학제품과 달리 정해진 규격이 없는, 각양각색의 요리 재료를 고르는 일이 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가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요리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화학제품과 달리 정해진 규격이 없는, 각양각색의 요리 재료를 고르는 일이 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아버지, 저 대학 안 가고 요리사 하려고요.” 8년 전, 독일계 특수화학기업 랑세스코리아의 고제웅 대표(55)는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의 폭탄선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의 호주 분교에서 요리공부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느 아버지들처럼 “난데없이 웬 요리냐”고 말릴 법도 했지만 이내 허락했다. ‘그래. 내 아들인데 그 피가 어디 가겠어?’ 》
○ 50인분 요리하는 맛에 휴가 떠나

매년 여름휴가를 떠날 때 고 대표가 꼭 챙기는 게 있다. 골프채도, 낚싯대도 아니다. 50대 남성에게 어울리지 않게 칼, 숫돌, 철판 등 자기가 직접 꾸려놓은 요리 세트다. 여행 갈 때마다 이것저것 갖추기가 번거로워 아예 필요한 도구를 골라 세트를 만들었다. “저는 어딜 가든 요리를 하니까 보따리를 꾸려서 손이 잘 닿는 곳에 놔둬요.”

고 대표는 여름마다 친구 가족들까지 모두 17명이 여행길에 나선다. 세 끼만 먹어도 하루 50인분이 넘는다. 그는 이 음식을 손수 대접한다.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 살만 떠서 수건에 두른 뒤 냉장고에 6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숫돌에 간 칼로 회를 떠 접시에 올려놓는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맛깔 나고 화려한 요리를 내오는 고 대표에게 친구들은 “너 때문에 아내한테 눈치 보인다”고 핀잔을 줄 정도다.

“공들여 만든 음식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기업 경영하면서 좋은 실적을 낼 때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 식품영양 전공한 아내보다 고수

요리사가 되겠다며 폭탄선언을 하던 딱 그때의 아들만 했을 때부터 고 대표는 요리가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산에 놀러갈 때도 유별났다. 그의 가방에는 냄비와 꽁치, 김치, 고추가 들어 있었다. 친구들이 음식을 사 먹을 때도 그는 혼자 요리를 했다. “냄비에 재료를 이것저것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이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때로는 요리책을 봐가며, 때로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습니다.”

아내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해 요리 솜씨도 좋지만 집에서는 고 대표가 한수 위다. 배추김치부터 총각김치까지 김치를 종류별로 직접 담근다. 채소를 굴소스에 볶아 만든 즉석요리, 깔끔한 콩나물국 등 자신 있는 요리도 많다. “아이들은 아빠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해요. 아무래도 아들이 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아빠 일상이 요리이다 보니….” 지금 고 대표는 아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이엘코리아 유기화학사업부에 입사해 20년이 넘게 화학기업에 몸담아 온 전문가다. 하지만 화학 주기율표 외우듯 음식 문화나 요리법도 줄줄 외운다.

“물회의 역사를 아세요?”, “소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옛날 동해안 지역에서 쌀이 귀해 회에 물을 말아 밥처럼 먹게 된 데서 유래했다는 물회, 역시 쌀이 귀하던 시절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 마시던 소주 등 온갖 이야기가 줄줄 쏟아져 나왔다.

○ 화학과 요리의 공통점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화학과 요리지만 고 대표는 닮은 구석이 많다고 했다. 요리할 때 제일 중요한 건 ‘균형’인데 이는 화학제품을 만드는 데도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좋다고 재료를 양껏 넣어버리면 맛이 이상해지게 마련입니다. 화학제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예요. 반응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인 만큼 괜히 욕심을 부리면 제품의 질이 떨어져요.”

그는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점들을 기업 경영에도 곧잘 응용한다. “몇 년 전에야 새삼 느꼈습니다. 제 음식을 먹는 분을 고맙게 여기고 정성을 다할 때 요리의 맛이 이상하게 더 좋다는 걸. 그때부터 우리 물건을 사주는 바이어들도 단순한 바이어가 아니라 우리 회사와 오래 같이 갈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더 최선을 다했죠. 정말로 성과가 좋더라고요.(웃음)”

랑세스코리아는 한국의 타이어 기업에 부틸 고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2007년 한국타이어와 기능성 부타디엔 고무를 장기 공급하기로 한 데 이어 작년에는 타이어의 주 원료인 부틸 고무를 2014년까지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고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작은 식당을 운영할 생각이다. 소백산 근처 전망 좋은 곳에 식당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자신이 만든 식사를 대접하는 게 꿈이다. “요리 재료는 화학재료와 달리 정해진 규격이 없잖아요. 똑같은 재료라도 계절에 따라, 요리법에 따라 맛이 살짝 달라지는데 그게 참 매력이에요. 요리 때문에 삶이 풍요로워요.”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고제웅 대표는


―1956년 인천 출생
―1981년 인하대 화학공학과 졸업, 바이엘코리아 유기화학사업부 입사
―1996년 독일 레버쿠젠 바이엘 유기화학사업부 근무
―1997년 바이엘코리아 유기화학사업부 부장
―1999년 바이엘 기초정밀화학 사업부 운영책임자
―2003년 바이엘코리아 화학사업부 총괄책임자
―2004년 바이엘코리아 랑세스사업부 책임자
―2005년∼현재 랑세스코리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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