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佛의 푸조티셔츠 구매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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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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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프랑스에서 열린 자동차경주대회인 ‘르망24’의 현장에 갔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 대회에는 이틀 동안 23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자동차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경기 자체도 대단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히려 서킷 밖에서 목격했다.

푸조자동차의 기념품 매장. 푸조(Peugeot) 글자와 사자 로고가 크게 찍힌 다양한 티셔츠를 비롯해 모자, 우산, 열쇠고리 등을 팔고 있었는데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뤄 계산하는 데 5분 넘게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기념품의 디자인은 상당히 세련됐고 가격도 티셔츠 한 장에 5만∼8만 원에 달했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엔 푸조 티셔츠를 입고 있는 푸조 팬들이 적지 않았다. 푸조 브랜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인 셈이다.

푸조는 프랑스에서 르노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약 17%)에다 고급차나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지 않는 평범한 브랜드다. 그런데도 푸조가 찍힌 옷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는 광경에 브랜드 가치에 대한 혼란이 왔다. 만약 한국에서 무려 50%의 자동차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현대차의 ‘H’자 로고가 찍힌 티셔츠나 모자를 내놓는다면 얼마나 팔릴까. 미안하지만 재고처리에 골치 아파질 것이라고 본다. 그 기념품을 착용했을 때 현대차 직원이나 작업복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터브랜드가 뽑은 지난해 브랜드 가치 상위 100대 기업 순위에서 현대차는 69위로 아예 순위권에도 들지 못한 푸조보다 오히려 높다.

그런데도 푸조는 왜 그런 게 가능한지 곰곰이 들여다봤더니 그들에게는 최소한 프랑스인이 인정하는 역사와 열정과 장인정신, 스토리텔링, 디자인 감성이 있었다. 푸조 브랜드의 역사는 200년이며 1894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경기인 파리-루앙 레이스에 창업주 아르망 푸조가 직접 참가해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랠리, 미국 인디애나폴리스500, 월드랠리챔피언십 등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번 르망24에서도 지난해에 이은 연승에는 실패했지만 경기 중반까진 1∼4위를 휩쓸며 프랑스인들이 푸조를 외치게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기술적 성과도 많았으며 푸조의 상징인 사자 로고는 디자인 측면에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간 3000만 명의 세계 관광객이 찾는다는 파리 개선문 앞 샹젤리제 거리에는 푸조 홍보관도 들어서 있다.

반면 현대차는 글로벌시장에서 푸조보다 상업적 지위가 높을지는 모르지만 유명 레이싱 등에 참여해 국민들이 브랜드에 열광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자동차 외적인 디자인 감성은 투박했으며, 직원이나 경영진 스스로도 여러 면에서 스타일리시한 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서울에는 홍보관도 하나 없다.

브랜드 가치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경영성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국가 브랜드위원회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 작심했다고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영자 스스로 보여주는 확고한 의지에서부터 구성원을 비롯한 기업의 유무형적인 모든 부분이 가치 있게 변해야 고객이 그 브랜드가 찍힌 옷을 사 입는다. 지금 스스로 자신의 회사 로고가 찍힌 옷을 작업복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볼 때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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