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돈 푸는 전쟁, 돈 흡수하는 전쟁

  • 입력 2009년 6월 20일 02시 59분


이번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돈’이다. 지난해 가을 이후 미국의 본원 통화량은 몇 개월 만에 두 배로 불어났고 1990년대 내내 연 7∼8%였던 선진 5개국의 통화 증가율이 올해 들어서 13%까지 튄 것만 봐도 돈이 얼마나 풀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2007년 약 80%에 머물던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올해 110%를 훌쩍 넘어섰다. 지금 세계는 빈사상태의 경제와 싸우기 위해 가능한 모든 화력을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지구촌을 떠도는 자본의 규모는 세계 실물의 규모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컸다. 이는 미국의 지속적인 통화팽창 정책과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의 결과물이다. 금융위기의 주원인이 돈을 너무 많이 푼 데 있었는데 문제해결을 위해 또다시 돈 보따리를 푸니 과거의 경기탈출 때보다 통화의 역할이 커진 것은 당연하다.

위기가 터진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는 파생상품과 주식, 채권, 사모펀드의 옷을 입은 다국적 자본흐름이 일거에 꽁꽁 얼어붙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최근에는 신흥국 시장, 그중에서도 아시아로의 자본이동이 활발하다 보니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클 수밖에 없다. 그 배경이 지난해 가을 이후 이 지역에서 빠져나간 자산을 원위치로 돌려놓는 데 있는지, 아니면 정말 이 지역의 투자매력 때문인지는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자본이 원유 등 상품시장과 신흥국 증시를 넘나드는 것을 보면 돈의 힘은 기세등등하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경기회복을 위한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을 민간소비와 민간투자라는 이름의 다음 주자에게 어떻게 잘 넘겨주느냐 하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아직은 실물체력이 허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칫 바통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경제지표의 자유낙하는 멈췄다지만 아직 실물경기의 새싹이 여린 상태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어떻게 펼칠지는 만만치 않은 고난도 과제다. 더욱이 미국의 경우 금리변동에 매우 예민한 금융부문 부실이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기준금리 인상과 통화환수는 성급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제까지는 돈으로 경제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이제부터는 ‘돈과의 전쟁’(통화환수)을 치러야 하니 세상은 항상 정말 돈이 문제인가 보다.

김 한 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