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5·끝>한국기업이 사는 법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1분


M&A로 글로벌 성장엔진 키워라

《현대자동차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연간 생산능력 10만 대 규모의 소형차 제조공장을 세운다고 19일 발표했다. 총 6억 달러를 투자해 중남미의 생산기지로 육성할 것이라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현대차가 임금 및 단체협상안을 놓고 노조와 ‘대치’ 중이었던 데다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시기여서 경제계에서는 “공격적인 투자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경기침체로 유력 기업들 시가총액 급락

삼성-현대차-LG 등 해외투자 적극나서

위기 장기화 대비 리스크관리도 힘써야

삼성전자도 최근 세계 플래시 메모리카드 업계 1위인 미국의 샌디스크에 현금 인수를 제안한 뒤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인수합병(M&A)으로 ‘몸집 불리기’를 하는 데 인색했던 점을 떠올리면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해외 투자와 M&A 시장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들 기업은 국제 M&A 등 글로벌 경영으로 살 길을 찾는다는 전략이다.

○ 확산되는 해외 기업 인수합병

M&A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LS전선은 최근 미국 최대 전선회사인 슈페리어 에식스를 사들였고, 동원그룹은 미국 델몬트의 수산사업 부문인 ‘스타키스트’의 미주지역 자산을 인수했다.

LG전자도 독일의 태양광에너지 전문회사인 코너지그룹과 지분 75%를 인수하는 형태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정해 세계적 수준의 태양광 기술을 확보했다.

국내 기업이 이처럼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신(新)사업을 발굴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거나 몸집을 불려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금융위기로 비롯된 세계 증시의 디스카운트 현상은 인수 대상 기업의 시가총액 하락으로 이어져 비교적 싼값에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삼성과 현대차, LG에는 위기가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글로벌 경쟁자들이 금융위기 속에서 투자를 지체하고 있는 반면 이들 3개 회사는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위기가 종식되면 승자로 떠오를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글로벌시장 재편의 서막

이번 금융위기 때문에 글로벌시장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에 따르면 미국이 9·11테러 이후 경기침체에 빠져들었던 2000∼2001년 비(非)금융권 기업 1024곳 가운데 상위 25%에 속하던 256곳 중 약 40%인 102곳이 상위권에서 밀려났다. 금융기업 264곳 중에서도 3분의 1가량의 순위가 재편된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권으로 진입한 기업은 △안정적인 재무구조 △상품 및 지역적 다각화 △침체기 동안 다른 기업보다 많은 투자 및 활발한 M&A 등 3가지 특징을 보였다고 매킨지는 분석했다.

국내 금융권이 미국의 금융위기 초기에 “100년 만의 기회”라며 미국의 투자은행(IB)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한국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하다 정부의 반대로 중단한 뒤 정치권의 질타를 받고, 한국투자공사(KIC)도 메릴린치에 투자했다가 비판을 받으며 발이 꽁꽁 묶인 상태다.

대조적으로 노무라증권 등 일본계 은행은 무너진 IB를 사들이며 세계 금융시장의 교두보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진주만 공습’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일본 기업들의 ‘미국 기업 사냥’이 본격화하는 등 많은 기업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능력이 있는 한국 기업이라면 M&A 전략을 적극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경영환경 불확실성 계속될 듯

‘위기는 기회’라는 시각과 달리 위기 장기화와 점점 커지고 있는 경영환경 불확실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OTRA는 최근 25개국을 조사한 ‘미국 금융위기에 따른 주요국 수출시장 긴급점검’ 보고서를 통해 “세계 수입 수요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최근 물가상승 추세와 맞물려 소비시장 위축이 두드러질 것”이라며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고 진단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고 고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공격적 투자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지금의 금융위기가 강도는 다르지만 짧은 주기로 반복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고려할 부분이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M&A 등을 통해 성장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은 상반된 것 같아도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모두 필수인 경영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금융위기가 지속되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성공적인 M&A를 위해서라도 유동성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가 정체될 가능성에 대비해 제품 가격과 마케팅, 재고관리 측면에서 불황 대비 경영계획을 준비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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