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1>글로벌 위기, 일과성 아니다

  • 입력 2008년 9월 22일 02시 56분


아직 폭풍속 세계경제… ‘위기 장기화’에 대비해야

실물경제 2∼3년 위축될 가능성도… 회복시기 예측불허

전문가 “한국정부, 시장서 정책신뢰 회복 초점 맞춰야”

“아직 폭풍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조지 소로스)

“현 상황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이며 아직 끝이 안 보인다.”(월스트리트저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위기가 일시적인 금융시장의 신용경색과 일부 금융회사의 도산으로 끝나지 않고 실물 부문 충격을 동반한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세계 금융회사의 손실은 약 1조 달러인데 현재까지 처리된 부실액은 5000억 달러 정도다. 부실의 절반가량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으로 ‘추가 부실 정리’에 따른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 위기 탈출 조짐도, 수단도 안 보여

금융위기는 일반적으로 시장의 자금흐름을 어렵게 하고, 주식 등 자산가치의 하락을 유발한다. 이는 또 기업의 유동성 타격과 그로 인한 고용불안, 투자 및 소득 감소, 내수침체의 형태로 실물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진 후 1년이 지난 지금은 유수의 투자은행(IB)과 대형 모기지 기관들이 쓰러지는 등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다. 금융 부문에 이은 실물 경제의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거나 아직 시작도 안 된 셈이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도 현재의 금융위기는 길게는 1년 정도면 지나가지만 앞으로 실물경제의 위축이 2∼3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의 끝’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각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 및 경기부양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된다면 일시적으로나마 상황은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 금융시장이 복잡한 파생상품을 통해 연쇄적으로 연결돼 있어 어디서 무슨 위험이 또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위기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장 큰 요인은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미국 주택경기의 침체가 좀처럼 회복 가능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미국 20대 도시의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7월 206.52로 절정에 달했다가 줄곧 내림세를 지속해 올해 6월에 167.69까지 떨어졌다.

주택경기의 회복이 늦어지면 미국 대출자들의 채무상환이 지연되고 금융회사들의 부실문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주택전문가들은 “빨라야 내년에나 시장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위기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가 부실 금융회사에 공급하려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도 2000년대 이후 수년간 쌓여 온 ‘자산 버블’의 후유증을 모두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경제주체들 장기화에 대비해야

글로벌 금융위기의 장기화는 오랫동안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경제의 회복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금융부문에서는 증시 및 외환시장 불안과 외국인 투자금의 철수가, 실물부문에서는 대외수출의 감소가 우려된다.

한국 경제는 오일쇼크 직후인 1981년엔 6.2%,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1999년엔 무려 9.5%의 성장세를 보이는 등 아무리 충격적인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1∼2년 사이에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이는 세계 경제가 위기 직후에 저금리, 저물가의 호황 국면으로 전환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란 점에서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약세를 보이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금융 불안이 장기화되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한국 등 신흥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 환율상승의 요인이 된다. 실물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정부는 ‘월가(街) 쇼크’의 파장이 국내 실물경제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위기설’ 때에 나타났듯이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정부가 시장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정책의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국민도 정부를 지나치게 불신하거나 현 경제위기를 이념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성공적인 신흥 기업의 탄생은 오히려 경기 불황기에 더 많았다”며 “기업들은 경영합리화나 군살빼기도 해야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부실자산 가격 낮게 써낼수록 우선 매입

■ 美, 7000억 달러 공적자금 투입

정부에서 꺼낼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성공이냐 실패냐 갈려

미국 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7000억 달러(약 795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번 조치가 금융시장에 안정을 되찾아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9697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7000억 달러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부동산 경기의 회생에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마지막 카드’가 될 7000억 달러

그동안 미국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구제해왔지만 금융위기는 계속돼 더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 결정은 사실상 미국 정부가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 이번 조치마저 약발이 듣지 않으면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 정부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기 위해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 연쇄 부도 위기 때 설립됐던 정리신탁공사(RTC)와 유사한 기구를 설립하기로 했다.

재무부는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월가 최고의 자산 전문가들을 고용해 부실자산 인수, 운용, 처분을 맡긴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실자산은 ‘역경매’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가격을 낮게 적어내는 금융회사의 자산을 우선적으로 매입해준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자산을 너무 싸게 사들이면 금융회사의 손실이 커져 또 다른 금융시장 불안이 될 수 있고 비싸게 매입하면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따라서 미국 국민의 공적자금 부담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될지, 7000억 달러로 충분할지 등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정부가 나서서 부실자산을 인수해주면 서로를 믿지 못해 초래됐던 최악의 신용경색이 완화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이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이 이른 시간 안에 회복되는 것이다.

○ 7000억 달러 투입의 성공 가능성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불가피한 조치이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화제가 됐던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이번 조치로) 일본처럼 10년의 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며 “‘침체’라는 열차는 역을 떠났지만 ‘회복’이라는 다음 역에 닿을 때까지 5년 대신 18개월 정도만 가면 된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번 긴급구제안의 성공 여부는 최종적으로 미국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자칫 더 큰 규모의 구제금융이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30일 이상 연체된 모기지 비율은 8월 말 현재 총 6.6%로 6월 말 5.8%와 전년 동기 4.51%에 비해 계속 오르는 추세다. 특히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는 연체율이 24.48%에 달해 6월과 7월에 비해 2.2%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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