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 가다]<8>기상관측기 만드는 ‘바이살라’

  • 입력 2007년 1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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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30km 상공까지 올라가면서 풍선 안에 부착된 센서로 대기 상층부의 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의 기상 정보를 측정해 지상으로 보내는 라디오존데. 개당 30만 원인 라디오존데 시장에서 바이살라의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사진 제공 바이살라
지상 30km 상공까지 올라가면서 풍선 안에 부착된 센서로 대기 상층부의 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의 기상 정보를 측정해 지상으로 보내는 라디오존데. 개당 30만 원인 라디오존데 시장에서 바이살라의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사진 제공 바이살라
바이살라 직원들이 기상관측기에 들어가는 센서를 만들고 있는 모습. 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과 같은 환경이 필요해 방진복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바이살라
바이살라 직원들이 기상관측기에 들어가는 센서를 만들고 있는 모습. 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과 같은 환경이 필요해 방진복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바이살라
《한국 기상청은 대기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제주 등 전국 6개 관측소에서 하루에 두 번 센서가 달린 풍선을 띄운다.

‘라디오존데(Radio-Sonde)’라고 불리는 이 풍선은 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의 기상 정보를 감지해 지상으로 보낸다.

개당 30만 원인 라디오존데는 30km 상공에 도달하면 터져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기상청은 연간 16억 원이 소요되는 이 기구의 80%를 핀란드에서 수입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100여 개 나라가 핀란드산(産) 라디오존데를 이용한다.》

바이살라. 세계 라디오존데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핀란드 기업이다.

라디오존데가 이 회사의 대표 제품이고 풍향, 풍속, 습도, 천둥, 번개 등 각종 기상 정보를 관측하는 장비를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 세계 기상관측기 시장 세계 1위 기업이다. 2005년에 매출 약 1억9790만 유로(약 2374억 원)에 3410만 유로(약 409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전체 직원이 1000여 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기상청이나 공항 등 수요층이 한정돼 있는 틈새를 파고들어 난공불락의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지만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에서는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KOTRA 이승희 헬싱키 무역관장은 “첨단 기술을 가진 제조회사가 별로 없는 핀란드에서 바이살라는 노키아와 함께 아주 특별한 기업”이라며 “바이살라는 1970년대부터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을 평정해 핀란드 사람들이 오래도록 애정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연 매출의 15%를 연구개발비로 투자

바이살라는 핀란드 기상청에서 근무하던 빌로 바이살라 박사가 1936년 설립한 회사다. 라디오존데 개발에 골몰하고 있던 바이살라 박사는 연구비를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자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독자적인 회사를 만들었다.

이런 창업 배경 때문에 연구개발(R&D) 비용을 아끼지 않는 전통이 조성돼 있다.

해마다 연 매출의 15% 정도를 R&D에 쏟아 붓고 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R&D 비용이 연 매출의 25%에 이른 적도 있다.

한국 증권선물거래소가 2005년 상장사 544개사를 조사한 결과 매출액 대비 R&D비 비율이 2.36%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바이살라가 R&D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알 수 있다.

에릭슨 핀란드 지사장을 하다가 지난해 바이살라 최고경영자(CEO)가 된 퀴엘 포르센 사장은 R&D를 우대하는 바이살라의 전통을 “R&D에 대한 열정이 문화로 형성돼 있다”고 표현했다.

R&D는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이어진다.

바이살라는 최근 습도측정기를 반도체 산업에 접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반도체 공장 등에서 무균복(無菌服)을 입고 작업하는 ‘클린룸’에서는 적당한 습도 유지가 필수이기 때문에 습도측정기가 필요하다.

이 회사 홍보담당 매니저 리사 아틸루토 씨는 “우리 회사의 습도측정기는 정밀전자 분야에서 과거 30년 동안 이용되고 있던 습도 측정 방식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 파주시 LG필립스LCD 공장을 비롯해 한국의 주요 반도체 공장에서도 바이살라 습도측정기가 설치돼 있다.

또 바이살라는 기상 정보를 각종 산업에 응용해 시장을 키워 가고 있다. 비가 와서 행사가 취소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날씨 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가 바이살라의 고객이 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끊임없는 인수합병(M&A)으로 덩치 키워

바이살라는 1985년부터 11번의 M&A로 규모를 키웠다. 이 회사가 인수한 회사들은 모두 기상 관측 관련 업체들이었다. 바이살라에 없는 기술을 갖고 있거나 기술이 우위라고 판단되는 회사들이 인수 대상이었다.

아틸루토 씨는 “서로 원해서 이뤄진 M&A였으며 적대적 M&A는 없었다”며 “처음 우리가 인수를 제의했을 때 거절했던 회사가 2년 뒤 우리 회사로 찾아와서 인수해 줄 것을 제의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M&A는 바이살라의 회사 규모를 키우는 효과 외에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다.

포르센 사장은 “세계 기상관측기구 시장의 규모는 연 6억 유로(약 7200억 원)로 추산된다”며 “파이가 작아서 2등은 먹을 게 없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이직률은 1%도 안돼

바이살라는 인력 유출에 대해 별다른 대비책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르센 사장은 인력 유출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반도체는 경쟁 회사가 많지만 이 분야에서는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상 관련 분야 엔지니어들은 바이살라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며 “그래서 한번 입사하면 거의 이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 회사의 이직률은 5%대로 아주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엔지니어 쪽은 1% 미만 수준이라고 한다.

헬싱키=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71년 동안 CEO 4명뿐▼

‘23.3년.’ 바이살라 역대 최고 경영자(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다.

창업자인 빌로 바이살라가 33년 동안 CEO로 있었고, 전문 경영인 출신 2대와 3대 CEO도 각각 23년과 14년 동안 회사를 이끌며 장수했다.

올해 창립 71년을 맞는 바이살라는 지난해 10월 취임한 퀴엘 포르센 사장까지 합해 CEO가 단 4명이다.

바이살라 측은 CEO들이 장수하는 첫 번째 이유에 대해 ‘경영 성과가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대 CEO인 위르요 토이볼라는 23년 동안 매출을 50배 이상 늘렸다. 3대 CEO인 페카 케토넨도 1992년 취임 당시 6000만 유로(약 720억 원) 수준이던 매출액을 2005년에는 1억9790만 유로(약 2374억 원)로 늘렸다.

이 회사의 대주주인 창업자 가족들의 성향도 CEO들의 장수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다.

바이살라에서 19년 동안 재직하고 있는 케네스 포스 이사는 “대주주들이 회사가 일관된 경영이념 아래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CEO가 오랜 기간 재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살라는 1990년 핀란드의 경제 불황과 막대한 돈을 투자한 미국 지사의 사업 부진이 겹치면서 회사 창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회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체 직원 700여 명 중 120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하지만 당시 CEO였던 토이볼라는 자리를 지켰다. 대주주들은 그가 23년 동안 회사를 성장시킨 공을 인정해 정년이 끝나는 1991년 말까지 기다려 새로운 CEO로 교체했다.

포르센 사장은 “CEO를 잘 교체하지 않는 전통 덕분에 경영진이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먼 미래를 보고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며 “바이살라가 기상관측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밑바탕에는 이런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헬싱키=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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