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자동차 공구 ‘손맛의 추억’

  • 입력 2008년 4월 29일 03시 00분


《허름한 개라지(Garage·차고) 안에 웅크리고 있는 올드카(Old Car). 백발의 노인이 틈틈이 시간을 내서 자신만큼이나 낡은 차를 조금씩 원상태로 복원해 나가는 모습은 미국의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노인과 아들이 함께 자동차를 복원하면서 오랜 대화의 단절로

서먹서먹해진 서로의 관계도 복원하는 눈물 찡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기름 묻은 손으로 자동차 공구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감정의 골이 치유되곤 하죠.》

정비비용이 비싸고 자동차가 생활의 중요한 수단인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 정비를 아버지에게 배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자도 그런 꿈을 꾸며 직접 간단한 자동차 정비를 시작하면서 자연히 자동차 공구를 사 모으게 됐습니다. 몇 만 원짜리 국산 공구세트를 사서 점화플러그를 교환한 것이 손수하기(DIY)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비의 범위를 점차 넓혀 가면서 자연히 다양한 공구가 필요하게 됐죠. 본래 악필이 만년필을 탓하듯이 초보 주제에 서툰 작업을 만회해 보겠다고 고가(高價)의 공구를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구의 대명사쯤 되는 미국산 ‘스냅온’ 스패너를 몇 개 손에 넣기 시작하면서 공구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죠. 스타빌레, 비아, 토네, 도니치, 코겐 등 수많은 해외 공구 브랜드가 있더군요.

차곡차곡 모은 각종 공구와 자동차용품이 작은 방을 하나 가득 채우고 나서야 ‘공구 쇼핑’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력은 아니고 가족들로부터 따가운 잔소리를 듣고 멈추게 됐죠. 눈물을 머금고 일부 공구를 정리하면서 살펴보니 제조국이 모두 자동차 3대 강국인 미국과 독일, 일본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뛰어난 품질의 ‘명품 공구’는 철강과 기계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와 궤적을 같이했던 것이죠. 자동차를 포함한 기계공업은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공구의 수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국산 공구의 품질도 높아지고 있어 한국산 자동차의 선전(善戰)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공구의 ‘손맛’을 즐길 날도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명차 브랜드의 최고급 차종은 가득 찬 전자장비로 별도의 교육을 받은 기술자가 아니면 손대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일반화되고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까지 나오면 ‘개라지의 추억’은 정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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