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등급 시대]<1>“쓴만큼 우대”… 혜택 ‘부익부’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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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왕’으로 대접받는 시대는 끝났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자산 규모에 따라 고객에게 소파를 제공하거나 서서 기다리게 한다. 신용카드업체는 씀씀이가 크고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만 특별한 서비스를 한다. 백화점이나 통신판매업체, 호텔 등은 매출에 얼마만큼 기여하는 고객인지 판단해 고객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바야흐로 ‘소비자 차별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 소비자들은 자신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소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거래 은행을 정하는 등 다양한 투자 및 소비 전략을 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운구용 캐딜락 리무진은 저희가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하나은행에 2억원의 자산을 맡겨놓은 인테리어디자이너 정모씨(43)는 올해 1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가에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박씨를 담당하는 하나은행 직원이었다.

A건설업체에 다니는 박모 대리(33)는 지난달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고 당황했다. 카드명세서에는 월 현금 서비스 한도가 2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줄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현금서비스 70만원을 연체한 결과였다.

은행과 신용카드업체 등 고객의 신용이 중시되는 금융계에서는 우량과 비(非)우량으로 고객을 갈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작업이 다른 분야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VIP ‘당신은 선택된 사람’=하나은행이 지난해 2월부터 제공하고 있는 리무진 운구차 서비스는 은행들이 우량고객에게 얼마나 ‘지극한’ 정성을 쏟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은행권에서는 ‘VIP 고객’ 20%가 수익의 80%, ‘매스(Mass) 고객’ 80%는 수익 20%에 기여한다는 ‘20 대 80 원칙’이 상식으로 통한다.

우량고객을 가르는 기준은 은행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억원 이상의 자산을 맡긴 고객이 VIP고객으로 분류된다. 이들에게는 은행 지점장 전권으로 대출금리를 낮춰주거나 예금의 금리를 얹어주는 등 ‘우대금리’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 정연근(鄭淵根) 부행장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은행의 수익성에 가장 도움이 되는 우량고객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용이 나쁜 고객들의 연체율 증가로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던 신용카드업체들은 ‘핵심고객 모시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비씨카드 전체 회원 중 4.7%에 불과한 ‘플래티늄 회원’이 되려면 △정부투자기관 은행·증권·보험사 상장기업의 임원 이상 △의사 변호사 세무사 법무사에 10년 이상 현직으로 종사한 사람 등이다. 이들에게는 연 1회 국내선 왕복항공권을 공짜로 주고 심지어 1cm 이상의 흉터가 남을 때 치료비와 성형수술비로 최고 1000만원까지 보장해 준다.

▽차별받는 비(非)우량고객=“같은 신용카든데 왜 저 사람은 무이자 할부가 되고 나는 안 되나요?” 앞으로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신한카드는 10일부터 상위 1.6%인 ‘로얄 AAA’ 등급 이용자에게만 모든 가맹점에서 3개월간 200만원까지 무이자 할부로 지불할 수 있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신한카드는 최고급 고객에게 현금서비스 수수료도 30%까지 깎아주는 등 ‘VIP클럽’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다.

같은 카드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이자 할부 서비스나 놀이공원 무료입장 등의 혜택을 공유하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객들도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진수(朴珍洙) 수석연구원은 “은행이나 신용카드 업체들은 자기 회사와의 거래액수나 횟수가 많은 고객을 우대한다”며 “분산된 거래를 한쪽으로 집중해 ‘주거래 은행’이나 ‘주거래 카드’를 만들고 수시로 자신의 신용도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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