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등급시대]<3>“돈 안되는 고객 과감히 떨어낸다”

  • 입력 2004년 3월 1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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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1시20분 국민은행 서울 동역삼지점. 점심시간이 끝난 이 시간이면 예전에는 돈을 넣거나 빼러 온 사람들로 붐빌 때다. 이날은 입출금 고객이 딱 3명. 사람들이 갑자기 이 은행을 덜 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단순업무 창구’ 앞의 대기용 의자가 없어지고 창구 직원이 5명에서 4명으로 줄어든 뒤부터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에 사는 50대 이모씨는 한 홈쇼핑업체에 수십만원대 겨울 코트를 사겠다는 주문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이씨는 이 업체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 지난해 가을 200만원대 모피코트를 샀다가 반품한다면서 홈쇼핑 직원을 네 차례나 집에 오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는 “지난번에 보냈다”고 했다가 회사측이 소송을 하겠다고 하자 이씨는 “착각했다”며 다음날 물건을 보냈다.

기업들은 우량 고객을 우대하는 한편 ‘불량 고객’을 차별하고 있다. 차별받는 고객들에는 이씨처럼 기업의 수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지만 수익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일반 고객도 포함된다. 소비자들은 ‘공동 구매’나 ‘안티 기업 사이트’ 등을 통해 파워를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소비자 차별하는 기업=많은 기업들이 ‘고객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관리비용이 더 드는 하위 고객들은 과감히 걸러내야 기업이 산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 고객을 떨어내는 ‘디(De)마케팅’이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1월 말부터 연 3%의 이자를 주던 ‘e자유예금’ 대상을 한달 평균 잔액 50만원에서 300만원 이상으로 바꿨다. 300만원보다 적으면 이자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는 뜻.

대부분의 신용카드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놀이공원 무료입장 혜택을 없애고 영화 관람 할인혜택을 줄였다. 이용객들이 내는 수익보다 마케팅 비용이 더 많았기 때문.

LG홈쇼핑은 주문한 물건을 쓰다가 반품하는 비율이 90% 이상 되면 ‘특별관리대상 리스트’에 올린다. CJ홈쇼핑도 ‘블랙리스트’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똑똑해지는 소비자=기업의 소비자 차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고려대 조명현 교수는 “수익성이 없는 고객을 떨어내는 것은 기업 활동상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상거래 구조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도 사실인 만큼 공정거래법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불이 자유로운 외국과 달리 한국은 기간도 제한적인데다 잘 바꿔주지 않으려는 문화가 팽배한 것이 한 예. 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생활공동체 등을 통해 ‘공동구매’로 ‘바잉(Buying) 파워’를 키우고 있다. 다음이나 네이트 같은 사이트에 기업 안티 사이트가 수십개 결성돼 있는 것도 같은 이유.

한 기업 안티카페 운영자는 “카페를 결성하자 회사측에서 ‘사이트를 폐쇄하면 전액 환불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카메라 마니아들의 인터넷사이트 디씨인사이드가 2년 전 카메라 회사의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서비스가 나쁘다고 꼽힌 한 회사는 당시 큰 타격을 받고 AS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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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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