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임규진/인어공주의 교훈 '선택의 대가'

  • 입력 2004년 4월 25일 17시 51분


코멘트
임규진 기자
임규진 기자
“네 목소리는 여기 바다 밑에서 가장 아름답지. 넌 그 목소리를 나에게 주어야 해.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마녀가 한 말이다. 당시 왕자를 사랑했던 인어공주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왕자는 인어가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어는 어류에 가깝고 사람은 포유류다.

하지만 사랑은 인종은 물론 생물학적 종(種)도 초월했다. 인어공주가 종 전환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고 바다세계 최고의 마녀를 찾아간 것.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던가. 종 전환으로 목소리를 잃은 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해 결국 바다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인어나라에서도 작용하는 기본적 경제원리가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야 오죽하랴.

세계적 베스트셀러 ‘맨큐 경제학’은 10대 기본원리 가운데 첫 번째로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를 꼽았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른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4·15총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대약진을 하면서 보수와 진보간 정책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성장논리에 가려졌던 ‘많이 놀고 조금 일하기’ ‘함께 나눠먹기’ ‘맑은 공기’ 등의 가치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무상교육, 무상의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부유세 신설, 이라크파병 철회 등이 대표적이다. 대가가 없는 선택이라면 정말 훌륭한 목표다. 근로자와 서민은 물론 이라크 민중까지 챙겨주는 마음을 누가 욕할 수 있으랴.

그러나 국민들은 싫고 좋고를 떠나 이 같은 목표를 위해 무엇을 얼마만큼 포기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생선장수가 손님에게 “이 꽁치를 사시면 옆집의 맛있는 삼겹살을 살 기회를 잃는 것입니다”고 말할까. 마찬가지로 정치인은 진보든 보수든 삼겹살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보자. 최근 전국금융산업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협상에서 계약직의 임금수준을 정규직의 40% 수준에서 85%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임금인상을 위한 정규직 임금 동결은 부결시켰다.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워 비정규직을 채용해 온 기업들 아닌가. 기업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더 이상 채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말 전체 실업률은 3.8%이고 20대는 8.7%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대가는 청년구직자의 일자리 박탈이다. 이를 막으려면 정규직이 임금동결 등 대가를 치러야 한다.

17대 국회의원들은 인어공주의 마녀처럼 “사람이 되려면 목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진실을 솔직히 밝혀줬으면 한다. 국민들은 인어공주처럼 선택의 대가를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어공주는 목소리도 잃고 사랑도 얻지 못했지만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었기에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