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신연수/손발 안맞는 내수진작정책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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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한 유통업체 사장은 얼마 전 출장을 가려고 공항에 나갔다가 급히 되돌아왔다.

상품권 접대 실명제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전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영업에서 상품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그는 부랴부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책회의를 해야만 했다.

#사례2

대형 유통업체들이 운행하던 셔틀버스가 3년 전 폐지됐다. 당시 유통업체들은 교통난이 심해지고 소비자들도 불편해진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의원 입법으로 공청회 한번 제대로 안 하고 강행되었다.

올해 들어 서울시는 백화점 등이 심한 교통난을 유발한다며 교통유발부담금을 두 배로 올렸다. 지난주에는 건설교통부가 서울 도심 등에 ‘대중교통 전용지구’를 만들어 자가용 승용차의 진입을 막겠다는 정책안을 발표했다. 건교부도 이번 발표를 하기 전에 관련 업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유통업계는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승용차 진입마저 제한되면 백화점과 주변 상가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면서 “교통기반시설 확충, 셔틀버스 부활 등 현실적 대안을 먼저 제시해 달라”고 반발하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나 교통 대책은 모두 취지가 좋은 정책들이다. 접대비 실명제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기업의 거래 관행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도입됐다. 교통난을 완화하기 위한 각종 규제들도 선진국에서 많이 실시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정책은 시행 시기나 추진 방법의 적절성, 다른 정책과의 조화가 또한 중요하다.

정부는 최근 국정 최대 과제로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 매년 5%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앞으로 5년간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 회복으로 수출은 웬만큼 되고 있으니 내수가 경기 회복의 관건인 셈이다. 일자리 창출에는 서비스 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내수와 서비스 분야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유통업체들은 요즘 계속해서 정부가 ‘뒤통수’를 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경기를 살린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접대비 실명제를 내놓고, 도소매업을 살린다면서 자가용 진입을 막는다면 손발이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빴던 작년보다도 매출이 10%는 줄 것 같다고 울상이다.

정부 정책은 기업 활동과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한번 발표한 정책은 되돌리기가 힘들다.

정부는 시행하려는 정책이 시의 적절한지, 이해 당사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는지, 전체 정책과는 조화가 되는지를 다시 한번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신연수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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