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디지털 전도사'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9시 01분


예고없이 찾아간 길이었다. LG전자 구자홍 부회장(55)의 집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H빌라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30분쯤. “아프다”고 경비실로 말을 전해온 부인 지순혜씨(56)는 잠시후 기자와 통화가 되자 거절하지 못하고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디지털 전도사’를 자청하며 최근 홈페이지(www.digital-ceo.com)를 연 구 부회장답게 거실에는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춰 놓은 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영화를 즐겨봤는데 요즘은 주로 음악을 듣습니다. 부회장님은 골프연습을 하시면서 음악을 즐겨듣지요.” 거실 가운데는 골프연습을 할 수 있도록 조그만 골프 퍼팅기가 마련돼 있었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 회장의 5촌 당숙. 오너 가족이긴 하지만 73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LG상사에 들어와 87년부터 전자분야에서 경영수업을 쌓아오며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경력을 닦아왔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을 맡을 만큼 전자분야에 관해서는 외부에서도 ‘전문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가정에서도 전자 전문가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궁금했다. “1년에 3분의 2는 해외에 계시는 분이니까 집에 오시면 주로 쉬시죠. 가족들 사이에는 ‘다정(多情)도 병인 사람’으로 통해요. 한 번은 아침에 밥을 하는데 가스레인지가 제대로 안 켜지기에 혼잣말로 ‘이거 왜 안되지?’ 했더니 그날 오후에 새 가스레인지가 배달된 거예요. 돌려보내긴 했는데, 하여튼 부회장님 앞에서는 무슨 불평을 못해요.”

부부에게는 올 5월 결혼한 딸 진희씨(24)와 11월초 군 제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 본웅씨(21)가 있다. 구 부회장의 ‘다정한 면모’는 딸이 결혼할 때 귀고리나 왕관 등 액세서리를 직접 골라준 것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가족의 특징은 연말이나 생일같은 ‘특별한 날’에 서로 카드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 부모와 자식 관계가 친구 사이 같다고나 할까. 본웅씨가 군대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쓴 2장짜리 편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실패를 두려워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구 부회장은 업무상 모임에도 가족과 함께 하길 좋아한다. 가정이 ‘일’에서도 가장 바탕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정 우선’의 원칙은 지씨도 마찬가지다. 그의 가정 관리 ‘노하우’는 또한 전공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지씨는 경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가정학을, 미국 뉴저지 주립대에서 영양학을 전공했다.

“맥주 한 잔을 해독하는 데는 물 두 잔이, 소주 한 잔은 한 병 분량의 물이, 양주 한 잔은 열 잔 이상의 물이 필요합니다. 부회장님은 ‘폭탄주 문화’를 없애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업무상 술을 마셔야 하는 분이지요. 술 드신 다음날은 해독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지요.”

▽취재후 느낌〓‘재벌가’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집안 분위기나 생활태도에서 ‘소박’과 ‘겸손’이 물씬 묻어났다. 지씨는 2시간여의 만남을 끝내고 집을 나서는 기자가 차를 움직이기까지 문밖에 서서 배웅을 했다. 그는 집에 온 손님을 ‘내쫓지 못해’ 만나긴 했으나 유교사상이 강한 LG의 가풍을 의식한 듯 “꼭 기사를 써야 하느냐”고 본보 경제부에 몇 차례 ‘걱정’을 전해왔다.

최고경영자(CEO) 배우자와의 밀착취재를 통해 기업인 및 그 가족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행여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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