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플라자/박래정의 금융이야기]1000% 살인금리

  • 입력 2002년 1월 14일 17시 27분


“세탁소를 꾸리다 얻은 1000만원 빚이 석 달만에 3배로 늘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세상을 떠나지만 사채업자들에게 정당한 세금이라도 추징해달라.”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에서 아내와 함께 음독자살한 오모씨(당시 37세)가 남긴 글이다. 오씨처럼 신용 사각지대에서 악덕 사채업자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넘쳐난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출근길 월급쟁이들에게 ‘급전 빌려줍니다’라는 카드를 건네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장 급전을 마련할 때는 고맙지만 자칫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부채함정’을 파기 십상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접수한 피해사례(D6면 참조)를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1307명의 피해사례 중 46.6%가 연 100∼300%의 고금리를 물었다. 500∼700%도 3.3%나 된다. 1000% 이상 ‘살인금리’에 시달렸다는 상담내용도 있다.

이자제한법 제정은 사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한국은행은 최근 “사채이자율이 높아지면 사채수요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사채를 쓰는 바람에 사채수요가 커지는 부작용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른바 ‘부채함정’ 현상으로 인위적인 금리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작년말 사채양성화법 제정에 대한 국회 재경위원회 논의에서 이자상한선 도입은 무산됐다.

사실 사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딴 데 있다.

사람들이 사채업자를 찾아가지 않아도 돈 빌려쓸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은행 보험 신협 금고 등 제도금융권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면 누가 살벌한 사채업자를 찾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최근 캐피털론 카드론 등 소비자금융서비스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은행 보험사들까지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이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증명한다. 이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면 사채시장을 대체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생긴 문제는 역시 ‘시장의 논리’로 해결해야 제격이다.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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