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정부 반면교사10년]<10>정보기관 정체성 잃은 국정원

  • 입력 2008년 1월 1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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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너무 쬔 국정원, ‘음지’ 모르는 정치조직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평양 대화록 유출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특성과 처신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누적된 국정원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발생한 필연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 출신의 한 인사는 15일 김 원장의 사의 발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동안 국정원이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통일부와 함께 대북정책 집행의 전면에 나선 것이 김 원장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임과 동시에 현재 국정원이 처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권 차원의 대북 ‘화해 협력(햇볕)’과 ‘평화 번영’ 정책이 가져온 정체성의 혼란은 지역 및 코드 인사와 융합돼 국정원의 역량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국익의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된 국정원=김 원장은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진 총리급 회담 등의 실무 작업을 주도하면서 ‘처음도 끝도 김만복’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국정원장이 은밀하게 진행돼야 할 대북 막후 회담에 간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김 원장은 전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과 역할을 언론에 노출하며 통일부 이재정 장관과 보이지 않는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한 국가 정보 문제 전문가는 “김 원장 사례가 보여 주듯이 국가 이익을 위해 음지에서 일해야 할 국정원이 ‘햇볕’을 받아 양지로 나오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지난 10년 동안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통일부화’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햇볕정책 전도사’로 불리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1999년 5∼12월)이 1999년 12월 국정원장에 취임하면서 국정원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준비 및 실행의 전면에 나섰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고도의 국내 정치 행위이기도 했다. 국익과 안보를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정권 차원의 대북정책 실행에 공개적으로 나서면서 조직은 급속도로 정치화됐다.

이명준 전 국가안전기획부 대북정책실 처장은 “김영삼 정부까지는 안기부가 정보를 이용해 정치권을 오염시켰다면 지난 10년 동안은 두 대통령과 이종찬, 천용택 씨 등 정치인에 가까운 원장들이 조직을 정치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지역과 코드 인사의 난맥상=보수 정권 당시와 같은 인사 파행도 계속됐다.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감시와 공작에 시달렸던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국정원 숙청에 나섰다. ‘북풍(北風)’ 사건으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 등 김현철 씨와 가까웠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직원 10%가 구조조정 명목으로 퇴직했다.

구조조정으로 빈 요직은 호남 출신 인맥이 차지했다. 1999년 5월 천용택 원장이 취임하면서 전북 출신인 엄익준 차장이 기용됐고 2000년 엄 차장의 후임으로 김은성 차장이 기용되면서 김형윤 경제단장, 정성홍 경제과장 등으로 이어지는 MK(목포 광주) 인맥이 득세했다.

이후 김 차장, 김 단장, 정 과장 등은 ‘진승현 게이트’와 ‘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 개입된 사실이 드러나 국정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지역 대신 ‘코드’ 인사를 했다. 노 대통령은 전임자가 임명한 신건 원장이 도청사건으로 물러나자 전문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권변호사이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인 고영구 변호사를 임명했다.

김만복 원장도 대표적인 코드 인사의 수혜자. 그는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에 경력 직원으로 들어간 후 공채 동기들에게 밀려 이렇다 할 요직을 경험하지 못했다.

1999년 세종연구소로 파견돼 당시 이종석 연구위원에게 북한 정보를 제공하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이 위원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되자 김 원장도 사무처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발탁돼 승진가도를 달리게 된 것.

▽역량 약화에 과거사 족쇄까지=정체성의 혼란과 인사의 난맥상은 조직의 역량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2001년 이후 국정원은 대북 공작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정보 전문가가 대거 자리를 떠나고 대북 공작마저 중단되면서 국정원의 중요 업무인 대공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고영구 원장 시절에는 국정원이 만든 정보와 경찰 정보가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정보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보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경향도 심했다. 국정원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정보기관이 만들어 낸 객관적인 정보가 정책을 견인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 생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병호(전 안기부 2차장) 울산대 석좌교수도 2006년 인터넷 언론인 ‘독립신문’을 통해 “햇볕정책이 ‘묻지 마’ 정책으로 변모하면서 북한 정보는 그 유용성을 잃어버렸다. 햇볕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사용될 뿐 그 외의 정보는 사장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과거사를 뒤지는 데 몰두한 나머지 국가 정보기관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2004년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출범한 뒤 국정원 직원들은 ‘간첩’이 아니라 ‘과거’와 싸워야 했다.

염돈재(전 국정원 1차장) 강릉대 초빙교수는 “정보가 국력인 시대에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정치화를 지양하고 해외 정보 수집 기능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국익의 관점에서 대북 정보 및 공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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