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실험 혹시 제2 ‘벨라 인시던트’?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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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지 나흘이 지난 13일까지도 진짜 핵실험이었다고 확신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대기 중 방사능 물질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KH-12 정찰위성도 핵실험 장소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함몰 같은 지형 변화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실험 장소와 촬영 사진을 공개하거나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핵실험의 진위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이런 북한 핵실험이 ‘벨라 인시던트(Vela Incident)’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벨라 인시던트는 1979년 9월 22일 오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단 인도양 상공에서 핵실험 탐지 위성인 미국의 ‘벨라6911’이 핵폭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중 섬광(double flashes)을 탐지한 사건이다. 폭발 규모는 2∼3kt(1kt은 TNT 1000t의 폭발력)으로 추정됐다.

당시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최초 판단은 “핵실험이 있었고, 그 책임은 남아공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핵전문가들에게 벨라6911이 포착한 자료들을 정밀 조사하게 했다.

그러나 1980년 여름 발표된 조사 결과는 “핵폭발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벨라6911에 오작동이 있었고, 유성체가 충돌했을 수도 있다”였다.

하지만 미국의 다른 전문가들은 당시 비밀리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스라엘과 남아공이 개별적으로 혹은 공동으로 핵실험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남아공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시간이 흘러 미국 정부의 비밀자료가 공개되면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됐지만 진짜 핵실험이었는지, 이스라엘과 남아공이 그 주체였는지를 입증할 정도는 아니었다.

1997년 4월 20일 이스라엘의 한 일간지는 당시 남아공 외교부 차관인 아지즈 파하드의 말을 인용해 “1979년 인도양의 섬광은 남아공 핵실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곧 파하드는 “내 말이 와전됐다. 떠다니는 소문을 말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북한 핵실험은 북한이 실험을 선언했고, 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벨라 인시던트와는 다르다. 그러나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근거가 다분하다는 점에서는 벨라 인시던트와 궤를 같이한다.

익명을 요구한 핵공학 전문가는 “북한 핵실험의 진위가 끝내 밝혀지지 않아도 북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식된다”며 “그렇다면 한국은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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