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북한 엿보기]<3>中범죄조직과 밀거래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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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순 어느 날. 북한 지방도시의 한 호화식당 룸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 4, 5명이 둘러앉아 자정이 넘도록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 한 남자의 격한 목소리가 울린다. “정말 미국 놈들은 나쁜 놈들이야. 공화국이야말로 가달러(위조 달러)의 피해자인데…. 또 개인적으론 나만큼 피해 본 사람이 어디 있나.” 남자는 국가보위부 소속 ‘한성회사’ 사장 황인국 씨다. 보위부라는 든든한 배경에다 한 번에 수십만 달러를 굴리는 ‘큰손’이다 보니 웬만한 노동당 간부도 그 앞에서는 허리를 굽힌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중국과 중고차 밀무역을 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일본에서 2000∼3000달러에 중고차를 사다 밤중에 수십 대씩 두만강을 넘어 중국 범죄조직에 넘겼다. 대당 곱으로 이익이 떨어졌다고 한다.

전성기인 2001년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공안은 자신들이 적발한 밀수입 차가 1만6000대가 넘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황 씨가 넘긴 차도 많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아편이나 마약도 넘겨 봤어. 하지만 가달러만큼은 아니야. 오히려 중국 흑사회(黑社會·범죄조직)에 얼마나 당하는데….”

밀수는 밤에 순식간에 이뤄진다. 받은 달러 뭉치는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중국산 위조달러 감식기로 일단 진위를 판별한다.

2001년 그는 한 번에 위폐 5만 달러를 받은 적이 있다. 분명 감식기로 확인했는데 낮에 사무실서 다시 보니 다섯 뭉치가 모두 같은 번호였다. 분했지만 이미 당한 뒤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부는 중국에 다시 몰래 넘겼지만 그 많은 양을 다 처리할 수는 없었다. 외국에 드나드는 외교관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중동에서는 위폐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며 팔라고 했다. 위폐 3만 달러를 9000달러에 넘겼다.

북한에서 나도는 위조달러는 크게 두 종류. 북한 주민들이 ‘인쇄’ ‘전자복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서방에서 슈퍼노트라고 하는 100달러짜리 위조인쇄판은 정교해서 액면가의 30%로 거래되고 컬러복사기 등으로 만든 전자복사판은 10%에 거래된다.

“얼마 전엔 우리 돈(북한 돈)을 찍어 주면 유통시킬 수 있느냐고 묻는 어떤 정신 나간 중국 놈도 있었어. 내가 그런 역적질을 할 리 있나. 좌우간 가달러는 중국이 근원이야.”

“중국에 가 봐. 좀 큰돈만 꺼내 주면 누구나 가짜 아닌지 세세히 살펴본다고. 얼마나 위조가 판을 치는 세상이면 그러갔어. 엉. 달러 위조는 당연히 이놈들이 하지. 중국이 미국과 함께 공화국의 위폐 제조를 조사한다고? 흥. 웃기는 얘기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전문가 한마디

위조달러 제조에 대한 제재문제로 한미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확한 증거가 있느냐 하는 것과 설사 있다 해도 과연 이 시점에서 제재가 바람직한가 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북한이 1990년대 들어 위폐를 대량 제조해 유통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한미 양국이 각종 공작첩보와 정보망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출처를 밝히고 이를 ‘현장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북한이 ‘증거를 대라’고 큰소리치고 나오는 것이다. ‘짝퉁’ 천국 중국에서는 전 세계 위조화폐가 다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국가가 조직적으로 행한 범죄라는 점에서 다르다. 6자회담을 지속시키려는 우리 정부의 충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사실을 사실대로 분명히 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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