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민주당 정권재창출 해법찾기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31분


《“다음 대선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올 정도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고 있지만 마땅한 차기대권 후보군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데 대한 우려의 표시다. 우려는 8월 전당대회와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

물론 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실력과 인지도, 그리고 정치지형으로 볼 때 과연 기대를 걸 만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 인사의 말이다. 여권 한 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불안감의 기저를 잘 보여준다.

“이인제(李仁濟)는 표가 꽉 차 있다. 다시 말하면 영남의 완고한 반대로 득표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노무현(盧武鉉)은 탈색이 필요하다. 한화갑(韓和甲)은 호남출신이라는 게 결정적인 약점이다. 김근태(金槿泰)는 아직 대중성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기복이 있긴 해도 정치적 외연을 착실히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평가다. 여권의 차기 대권 고민과 시간이 흐를수록 백가쟁명의 양상을 띠어 가고 있는 ‘처방’을 짚어본다.》

▼"밖에서 키워보자"▼

요즘 간헐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외부 수혈론’이다. 안에서 없으면 밖에서라도 찾자는 것. 물론 민주당과 청와대는 펄쩍 뛴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도 20일 “인물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냐”며 일소에 부쳤다. 그래도 수혈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태세다.

그 논거는 대체로 “차기 대선에서도 영남권의 일부 지지 없이는 매우 불리한 싸움을 해야한다”는 현실 인식에 모아진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이총재가 비영남권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된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그래서 “영남에 어디 적당한 인물이 없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묻기도 한다.

이들은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영입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한 인사는 “우리로서는 정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말했다. 영남표의 분열속에 민주당의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정의원은 아직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과거 입당제의를 받았으나 거부해 정치적 도약의 기회를 놓친 이수성(李壽成)씨의 전례를 정의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고건(高建)서울시장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의 뿌리가 호남이라는 점이 역시 부담으로 받아들여진다.

▼안에서 키워보자"▼

‘외부 수혈론’은 당연히 반발을 낳고 있다.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민주당의 차기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의 한 인사는 얼마전 권노갑(權魯甲)상임고문을 만나 “인물을 키워야 할 것 아니냐. 도대체 어떻게 대선을 치르려고 하느냐.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지원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불만은 한마디로 “있는 사람은 키울 생각을 않고, 왜 ‘남의 떡’ 크다는 얘기만 하느냐”는데 모아진다. 민주당의 한 중진은 “한나라당 이총재는 사실상 후보로 확정이 됐기 때문에 커 보이지만 민주당은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아 작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들 주자군의 이상향은 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내의 ‘9룡(龍)구도’다. 당시 신한국당 내에서는 이회창 이홍구(李洪九) 이수성 이인제 박찬종(朴燦鍾) 김덕룡(金德龍)씨 등 9명의 인사가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서로 키워주는’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후보의 조기 가시화는 김대중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긴다는 점 때문에 김대통령이 제시한 2002년 1월 전당대회 전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차라리 내각제로" ▼

‘인물 부재론’은 자연스럽게 틀을 바꾸자는 얘기로 발전한다. 개헌론이 그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극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내각제 개헌을 하면 어떠냐”고 운을 뗀 적이 있다. “대선이 어렵다면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해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지금은 잠복해 있지만 현 여권의 구도상 내각제 개헌론이 언젠가 한 번은 수면위로 머리를 내밀 것이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관측이다. 내각제 개헌이라는 권력분점 구도가 이뤄질 수만 있다면 최상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게 일부 여권 인사들의 생각이다.

김대통령의 퇴임후 문제를 보거나 현재와 같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는 지역갈등 구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개헌론은 그러나 한나라당 이총재가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4년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도 당내 일부 후보군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인제상임고문이 이미 깃발을 들었고, 다른 후보들도 대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각제는 주로 김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중임제나 정부통령제는 차기 대선 주자들이 선호하는 듯한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총재가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기 때문에 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교환되는 형식으로 개헌론이 공론화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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