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98정국⑤]「巨野」가보지 않은길 불안한 출발

  • 입력 1998년 1월 8일 20시 42분


사상 최대 규모 야당인 한나라당이 무인(戊寅)년과 함께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이 해가 끝날 무렵 한나라당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는 거대 야당으로 살아 남을까. 살아 남는다면 어떤 구조와 체질로 변해 있을까. 한나라당의 출발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불안하다. 내부요소와 외생변수 모두 한나라당의 생존과 야당으로의 거듭나기에 불리한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우선 당내부를 살펴보자. 지금의 한나라당은 민정계의 이한동(李漢東) 김윤환(金潤煥)고문세력, 민주계의 김덕룡(金德龍)고문계와 부산 민주계, 구 민주당의 이기택(李基澤)전총재와 과거 국민통합추진회의 세력이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조순(趙淳)총재는 이들 세력과 자신을 합친 ‘7인 중진협의체’로 당을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중진과 초재선 그룹들이 벌써 “7인 모임이 도대체 뭐냐”며 비토를 놓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적 재기를 꿈꾸는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도 변수다. 동거라기 보다는 ‘난거(亂居)’에 가까운 이같은 혼합구조는 과거의 3당합당,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통합 등 정치적 이합집산의 결과다. 그리고 그 이합집산의 동인은 ‘여당〓대선 승리’라는 등식이었다. 그러나 헌정 사상 첫 여야간 정권교체로 이 등식은 깨졌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내부에서 원심력은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듯 불안한 몸을 이끌고 가야 할 한나라당에 우선 구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 마무리 작업이 발등의 불이다. 정당법상 합당 3개월 이내인 2월20일까지 조직책 선정을 마치고 지구당 창당대회를 끝내야 하기 때문. 신한국당 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은 “대선에 패배한 마당에 합당시의 7대3 지분 합의를 지키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민주당 출신들의 반발도 뻔한 일. 이 딜레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한나라당이 당면한 숙제다. 당 조직책 정비를 마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정기 전당대회가 닥쳐 온다. 벌써부터 당내에서는 당 지도체제 문제를 두고 각 계파간 물밑 힘겨루기가 치열해지고 있다. 전당대회를 겨냥, 조직책과 당직자 대의원 등에 자파 세력 심기도 가시화하고 있다. 3월10일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러내느냐가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미처 내부정비를 마치기도 전에 다가오는 3월의 재 보궐선거와 5월의 지방선거는 또 다른 부담이다. 현재 구도대로라면 5월에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공천을 시도할 것이 분명하고 그럴 경우 한나라당은 영남지역외에서의 승산이 희박해진다. 자칫 ‘영남당’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안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할 여권의 정계 재편 움직임도 한나라당의 ‘홀로 서기’를 위협한다. 경제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지방선거까지 마치면 여권은 여소야대 정국깨기를 기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지도부는 “인위적인 의원 빼가기는 안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을 내세운 한나라당 흔들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게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특히 내각제 논의에 대비한 여권의 ‘빼앗기’와 한나라당의 ‘지키기’가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싸움에는 국민신당도 가담할 것이다. 원내 8석의 국민신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활로다. 그래야 ‘이인제(李仁濟)1인당’의 이미지도 벗고 향후 내각제 논의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 국민신당은 5월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 모든 내적 외적 도전에 응전하는 길이 당의 단합임은 거듭 말할 필요가 없다. 김태호(金泰鎬)사무총장이 올 들어 “이제 당의 단결을 해치는 것은 해당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살행위”라고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1백62석이라는 거대 의석, 그것도 이질적인 정파들이 한 데 섞인 당의 체구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비만한 몸처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당을 온존시키는 것보다 어떻게 성공적인 체질 개선을 하느냐다. 체질 개선의 성패는 단순히 씀씀이를 줄이고 조직과 인원을 축소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사상 최초의 집권 경험을 가진 거대 야당으로서 여당과 주도권 경쟁을 벌일만한 새로운 구조의 확립이 관건일 것이다. 이회창명예총재는 “우리는 과거 야당 스타일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창출하는, 역사상 첫 정치실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실험’의 첫 단계는 당의 새로운 중심세력 형성이 될 것이다. 현재의 조순총재―이한동대표 체제는 이회창명예총재의 선거운동과 대선승리를 담보로 급조된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당내부와 여권은 물론, 국민에게까지 정통성을 인정받는 새로운 지도세력의 형성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의 성패가 올해말 한나라당의 모습을 예측하는 가늠자가 될 것 같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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