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내 마음 누가 알아줄까 … 심리상담이 절실한 이유

  • 입력 2016년 3월 16일 13시 21분


코멘트
“전화기를 드는 것 자체가 무서웠어요. 진짜 내 상황이 상담까지 필요한 걸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

직장인 한모 씨(29·여)는 지난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심리상담을 받은 것’을 꼽는다. 대학 시절 ‘과 톱’을 놓치지 않던 성실한 그녀는 남들의 기대와 달리 졸업과 동시에 방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근황에 끊임없이 물어대는 대학 동기들과는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 한 씨는 “당시 목표를 잃었다”며 “연애도, 커리어도 관심이 없어 교수님 추천으로 어영부영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공부에는 소질이 있어 성적은 좋았지만 졸업 후에도 뭔가 해야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하기만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정작 한 씨는 나날이 권태로웠다.

시간이 흐르며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자신의 증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장녀콤플렉스’가 만든 우울증이었다. 그는 “상담하는 동안 울고 웃으며 자신의 상태를 알아가는 게 행복했다”며 “우울한 기분의 원인을 알게 되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우울하다. 행복해 보여도 ‘아닌 척’ 숨기는 경우가 적잖다. ‘스마일마스크증후군’ 등을 비롯한 각종 증후군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인은 정도가 심각한 편이다. SNS에는 ‘행복하다’는 말이 가득 차 있지만 정작 주변에 실제로 그렇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행복’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국내 성인의 36%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조사 대상자 중 3분의 1은 우울, 불안, 분노 등 정서적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울증은 28%, 불안장애는 21%를 차지했다.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돼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사람도 11%에 이른다.

하지만 정작 이를 풀 데가 없다. 우울감이나 치밀어오는 분노는 누구나 짊어지고 사는 십자가라고 여길 뿐이다. 용기를 짜내 주변 사람에게 고민을 풀어놔도 ‘너만 힘드냐’, ‘난 너보다 더 심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듯) 힘내’ 같은 답변만 돌아온다.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울과 불안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이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혹자는 폭식으로 슬픈 기분을 떨쳐버리며, 알코올중독·성중독에 빠지거나, ‘얼굴만 고치면 팔자가 필 것’이라는 맹신에 빠져 성형수술 중독에 이르거나,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깊은 마음에서 비롯돼 나타나는 행동을 단순히 ‘내가 의지가 약해서’ 문제가 반복되는 것으로 여기며 자신을 탓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마음이 견디는 무게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친 내 마음 누가 알아줄까. ‘공감’의 부재는 결국 입을 닫게 만들고 속을 곪게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내 마음이 왜 이렇게 공허하고 슬픈지’ 해답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는 마음 전문가가 필요하다.

실제로 정신과 등에서 심리상담을 받길 원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같은 조사에서 일생에서 한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로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싶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2%나 됐다. 상담받고 싶은 문제는 우울증이 44%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정작 상담을 결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2011년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결과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이들 중 15%만이 치료서비스를 이용했다. 미국(39.2%)이나 오스트레일리아(34.9%) 등에 견주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이는 심리상담 등 정신과 치료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도 한 몫 한다. 상담을 받는다고 말하면 어딘지 ‘어둡거나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은연 중 낙인찍힐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수 있다. 자신의 기분이 왜 그런지 컨트롤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훨씬 높아진다.

심리치료를 받으려는 목적은 각양각색이다. 자존감이 낮아 회복하고 싶거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느끼거나, 진로설정에 어려움을 겪거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거나, 유가족의 상실감을 완화하고 싶거나, 연예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개선하고 싶거나, 자기분석을 목적으로 상담에 나서는 등 광범위하다.

가령 반복적으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일 수 있다. 폭식은 일종의 음식중독으로 술로 스트레스를 풀듯 음식으로 마음을 위로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치료사들은 용기를 내 전화를 드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처음 상담소나 병원을 내원해 도움받으려는 내용과 변화를 결심한 동기를 알아보게 된다. 심리검사 평가지를 작성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이어간다. 일종의 ‘마음의 X-레이’인 셈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치료 방향을 설정한다. 상황에 따라 심리상담, 약물처방, 병행치료 등의 처방이 내려진다.

서울 반포동 유은정의좋은의원의 유은정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심리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 설정’”이라며 “그 목적은 소위 ‘힐링’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알아가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순간적인 힐링이 필요하다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떠는 게 오히려 유익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 상태 파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틀이 된다. 대체로 마음이 고통스러운 것은 지금의 내가 어떤 마음인지,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무엇인지 발견하는 게 상담의 목표가 된다.

심리상담의 절반 정도에 이르면 중간평가에 나서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첫 방문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게 된다. 이후 한 세션이 끝나면 상황에 따라 목표 달성 정도를 체크하고 연장할지, 종결할지 결론을 내게 된다.

필요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유은정 원장은 “상담으로 마음을 개운하게 해도 의지까지 내 마음대로 다지기란 어렵다”며 “우울증 등은 감정을 조절하는 뇌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 일종의 ‘뇌질환’으로 단순히 마음먹는 것만으로 단번에 태도를 바꾸는 것은 기적에 가깝기 때문에 약물 등의 수단으로 개선할 의지를 고취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도파민 등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저조한 분비와 연관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의지가 약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니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고 저절로 치료되는 것도 아니다. 고혈압의 대부분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본태성인 것처럼 우울증도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가 허다하다. 고혈압약을 먹으면 혈압이 떨어지듯 우울증치료제를 복용하면 우울증이 절로 개선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가가 협력해 치료에 나서는 게 효율적이다. 유은정의좋은의원의 경우 부설 상담기관 ‘굿이미지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박사급 심리상담전문가인 장창민 센터장을 비롯해 석사·1급 심리상담전문가 수 명이 상담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건강보험 적용대상 질환으로 약값 부담을 덜 수 있다.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경우 일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담치료비는 대체로 일정 시간 이상은 비급여이며 병원마다 다르다.

글/취재 =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정희원 객원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