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과 어울림으로 본 한국의 감성과 미감,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展

  • 입력 2014년 7월 9일 09시 22분


코멘트
한국 현대미술작가들의 고유한 시각과 미감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 불상, 도자기, 한옥 등을 소재로 했던 전통예술이 조금 지루했다면 한국 현대미술만이 가진 독자적인 특수성과 창조적 미의식이 돋보이는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展에 주목하자.

자연에서 찾은 한국 현대미술의 미의식
5월 17일부터 9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품 특별기획전 두 번째 전시인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展이 열린다. 본 전시회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자연’과 교감하며 독창적인 감성과 미감을 보여주는 회화, 한국화, 조각 등 현대미술 전 장르의 대표작 140여 점이 소개된다.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展은 ‘자연’이라는 큰 주제 안에 ‘울림’, ‘어울림’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제1전시실 ‘자연 하나: 울림’은 본질이자 근원적 형태로서의 자연을 형상화한 작품이 준비돼있다. 함축과 은유, 비움의 여백, 여운과 울림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 고유의 정신적 미감을 감상할 수 있다.

제2전시실 ‘자연 둘: 어울림’에서는 자연 풍경, 현대인과의 소통, 동물과의 교감을 키워드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작품을 소개한다. 한국의 자연에 대한 관찰, 일상의 현대인을 바라보는 애정의 시선, 전통적 소재인 말, 소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해학미 등을 통해 한국미술의 풍부한 감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을 향한 작가들의 따뜻한 시선과 공감, ‘자연’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와 깨달음을 통해 창조된 또‘ 다른 자연’의 세계가 펼쳐진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듭하며 스스로 온전히 존재해온 자‘ 연’은 세상의 모든 예술가에게 끊임없이 창조적 ‘영감’을 제공해왔다.

자연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와 깨달음이 투영된 간결한 형태의 ‘추상 작품’과 자연과의 교감과 관찰을 통해 포착한 ‘자연의 미세한 표정’ 속에서 관객들은 한국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고유한 미감과 안목의 단편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 하나: 울림
제1전시실에 펼쳐진 ‘자연’은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 속에 의도적인 것, 군더더기와 장식을 최대한 자제했다. 근원적이며 핵심적인 어떤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비우고, 덜어내는 과정을 수행했던 작가들의 농축된 기의 흐름이 담겨있다.

김주현 <자기 확장법-The one>, 2005(2006 재제작)
김주현 <자기 확장법-The one>, 2005(2006 재제작)

김주현의 <자기 확장법-The One>(2005/ 2006재제작)은 나무 쌓기의 부조 작품이다. 좁게 시작된 아랫부분이 위로 올라감에 따라 점점 넓어지다가, 다시 만나기 시작하여 결국 꽉 물린 하나가 된다. 외관상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다른 차원에서는 서로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송현숙 <2획>, 1997
송현숙 <2획>, 1997

초록색 바탕면 위에 단 두 개의 단호한 획으로만 이루어진 송현숙의 <2획>(1997)은 설명적인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단순하고 절제된 화면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여백과 여운의 개념을 중시한 전통적인 미감의 현대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주된 관심은 고향, 민족, 전통이라는 개념에서 발현되는 한국적인 정신과 정서의 표출
이다.

그는 달걀에 송진 안료, 물, 식물성 기름 등을 섞어 만드는 전통방식의 템페라(Tempera) 기법을 통해 세월의 흔적을 품은 듯한 깊은 색채와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필획을 구사한다.

이우환 <조응>, 1994
이우환 <조응>, 1994

이우환의 <조응>(1994)은 일필로 찍힌 점의 응축된 힘과 위치, 방향, 색의 농담 그리고 여백과 점과 점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우연과 필연, 관계와 만남의 개념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커다란 순백의 화면 위에 가로 또는 세로로 무심하게 찍어 놓은 듯한 점들은 독자적인 내재율(內在律)을 지닌 동시에 엄격한 질서와 절제된 표현이다.

텅 빈 캔버스와 8개의 점으로 구성된 화면은 그리다 만듯한 미완결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곧 무(無)의 세계와 맞닿는다. 이 작품은 예술을 인간과 세계가 만나는 현상학적 구조로 파악하며, 물질세계와 관념의 세계가 만나는 장을 제시하는 작가의 예술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 둘: 어울림

제1, 2전시실을 연결하는 거대한 벽면의 위쪽 높은 하늘에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구름이 둥실 떠 있고, 수평선 위로 올망졸망 솟아오른 낙도(落島)의 아스라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들꽃과 잡풀들이 땅으로부터 솟아올라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며, 고요한 시냇가의 거울 같은 표면 위로 얼굴을 내민 조그만 바위와 물 위에 떠 있는 버드나무 잎사귀가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씩씩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마디마디 옹이진 대나무가 빽빽한 대숲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은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자연의 풍경을 지나 들어선 전시장에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 벽면 가득 펼쳐져 있다.

대도시의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는 수많은 익명의 도시인들과 서민의 발인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웃들의 세밀한 일상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민아파트에 사는 32가구의 같은 공간, 다른 삶을 보여주는 영상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소통 부재의 삶을 사는 현대인의 삶 속에 감춰진 우리 이웃들의 작지만,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2000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2000

<을지로 순환선>(2000)의 작가 최호철은 회화는 물론이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장르를 오간다. 그는 가수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아 <을지로 순환선>(2000)을 구상했다.

이 작품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지하철의 대표 역 중 하나인 2호선 신도림역에 진입하는 전철의 안팎 모습을 담고 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들을 얽어매고 있는 관계의 끈들을 보기 좋게 그려 낼 수 있는 낙서를 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커다란 화면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현대인의 소박한 삶과 일상을 세밀하고 정감 있게 표현해낸 이 작품은 일상의 힘겨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우리 이웃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작가 김상우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감사하고, 후회하고… 사람에 대한 기억, 그것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 한다”고 언급했다. 그의 관심은 시종일관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낯익은 보통 사람들이다.

김상우 <세대>, 2003
김상우 <세대>, 2003

<세대>(2003)는 위아래로 길게 늘여진 변형캔버스에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을 한 명씩 그려 넣은 작품으로 총 10점으로 이루어진 연작 형태다. 김상우 특유의 정교한 테크닉으로 재현된 각 인물은 실제 인체와 동일한 크기로 재현되어 마치 실재 인물을 직접 맞대면한 듯한 현장감이 전해진다.

취학 전의 개구쟁이 꼬마에서 초·중·고등학생, 여대생, 성인 여성, 회사원,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인물들은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다뤄진다. 마치 무작위적으로 채집된 표본처럼 보이는 각 인물이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일상적인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기에 생동감 있다.

김수익 <모정>, 1992
김수익 <모정>, 1992

김수익의 작품 <모정>(1992)은 그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 소의 이미지를 향토적 색감으로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제시한 수작이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김수익의 작업에 대해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인물을 주요테마로 삼고 있으나, 그렇다고 엄격한 의미에서의 인물화 또는 추상화는 아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항상 풍경, 아니면 정물이 곁들어져 있으며 또한 인물들(대개의 경우 여성)은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정형화된 인간상, 그것도 한국적 인간상들이다. 그리고 그 인간상과 그 동반자로서의 풍경이나 정물이 서로 교감하며 하나가 되어 은밀한 정감의 세계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석원 <푸른 그물 안의 쏘가리>, 1992
사석원 <푸른 그물 안의 쏘가리>, 1992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형상을 화면에 가득 채우고 나머지 여백을 물감을 뿌려 거친 붓 터치로 표현한 사석원의 작품 <푸른 그물 안의 쏘가리>(1992)는 화면 전체에 역동적인 힘과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작품은 어딘가 모자란 듯 어수룩해 보이는 형상의 동물이나 새, 나무 등을 제외한 모든 이미지는 추상적으로 처리되는데, 이것은 기존의 형식미에 구애받지 않고 순발력 넘치는 묘사력으로 파격적인 형태미를 이끌어내려는 작가의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전시개요
제목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
Korean Beauty: Two Kinds of Nature
일시 2014. 5. 17 ~ 9. 28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1·2전시실
출품작 회화, 한국화, 조각, 사진 등 약 140점
주관 국립현대미술관


기사제공 : M미디어 라메드 김효정 기자 (kss@egihu.com)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