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로 우울증 심화… 달라진 환경에 맞춰 건강한 일상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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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두려움 느끼는 국민 늘고
젊은층, 답답함에 일탈하기도
코로나 블루 등 부정적 단어 자제
정부 차원 세심한 정책 마련해야

오후 9시 이후 술집 영업이 풀린 14일 서울 중구 충무로 부근 호프 골목에서 시민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DB
오후 9시 이후 술집 영업이 풀린 14일 서울 중구 충무로 부근 호프 골목에서 시민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DB
우리는 잦은 전쟁과 외환위기 등을 겪은 탓에 쉽게 불안감을 느끼는 특성을 가진 민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이런 국민 특성이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3단계에서 1단계로 완화되고 술집과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간 집에만 있기 답답했던 젊은 층은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거리로 나왔다.

집에 아이가 있거나 행여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까 외출도 자제하는 사람들도 심한 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철저한 방역과 더불어 국민이 ‘코로나19 시대’라는 낯선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긍정과 활력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억압된 감정, 위기 상황에 분출되기도


‘타란텔라’라는 이탈리아 춤이 있다. 춤의 기원은 이렇다. 중세 이탈리아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번졌다. 감염된 사람들은 남녀노소 광기 어린 상태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췄다. 이 시기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는 타란툴라라는 흉측한 왕거미가 있었는데 후에 사람들은 이 거미에게 물리면 춤을 추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전해지는 이야기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거미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거리로 나와 광란의 춤을 췄다는 설이다.

고려 명종 15년에는 강남(江南)의 부녀로 얼굴이 곱고 남편이 없는 자는 모두 죽인다는 요사스러운 말이 돌았다. 양가의 여자들이 소문을 듣고 곧 죽을 터인데 무엇이 아깝겠느냐고 하면서 길거리에서 대놓고 음란한 짓을 하는 자까지 생겨났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재난 영화에서 위태로운 순간과 극적인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에로스가 등장한다. 쌓여있던 억압이 위기 상황에서 분출되면서 보여지는 행동들”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그동안 방역을 위해 어느 정도의 행동 제약에 순응했던 사람들도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면서 “특히 젊은 층의 일탈 행동은 ‘참아 달라, 하지 말라’ 등의 말로는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사 장기화되면서 우울을 겪는 국민이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9월 전국 19∼70세 성인 20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분기(7∼9월)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느끼는 걱정과 두려움 지수는 평균 1.77이었다. 1차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3월에는 1.73, 완화 단계였던 5월은 1.59다.

자료: 보건복지부
자료: 보건복지부
부정적 메시지 방역 대책에 도움 안돼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불안과 우울을 암시하는 메시지 전달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우울증 같은 용어의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코로나 블루나 코로나 우울증 같은 용어들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국민들은 부정적 암시를 받게 된다”며 “실제 정신건강 척도(PHQ-9)로 우울증 여부를 조사해보면 자살 위험군이나 우울증이 아닌 사람도 자신이 우울증인 것 같다고 대답하는 응답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 메시지는 중·장기적인 방역 대책이 필요한 현 시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현재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며 “재난 상황을 경험했을 때 보일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첫 번째 원칙은 병리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에 아이들이 떼를 쓰고 짜증을 내는 것이 곧 아이들의 우울증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모두 불안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 회장은 이제 정부는 3갈래의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해있는 첫 번째 그룹에 대해서는 코로나19로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긍정적 메시지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그룹은 표적 개입이 필요한 군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들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이다. 이 집단은 고위험군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관계자들은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빠르게 찾아내고 고용, 정신건강, 사회적 지지가 결합된 접근을 해야 한다. 세 번째 그룹은 평소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들과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이들이 치료에서 누락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각자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관리자 입장에서 나오는 정책들을 지양하고 방역과 더불어 국민 활력을 충전하는 방법들까지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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