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시대 수학-코딩은 필수… 문과생도 배우면 첨단 AI 개발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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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시간에 수학 가르치는 고려대 남호성 교수
언어학 공부 계기로 코딩에 매료
인문계 학생에 행렬-미분 가르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이자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인 남호성 교수. 수학 포기자에서 코딩의 귀재가 된 그는 “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수 지식”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이자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인 남호성 교수. 수학 포기자에서 코딩의 귀재가 된 그는 “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수 지식”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문학 수업시간에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고려대 영문학과 남호성 교수(48)다. 그는 미국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수업시간에 행렬과 벡터, 미분과 통계를 가르친다. 왜 이런 일을 할까. 문과대생들은 대학 입학 후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심한 경우 고교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인 경우도 많다. 그는 이에 대해 “인공지능(AI)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음성인식 분야”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음성학을 연구하고,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는 문과대생들도 이제는 반드시 수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고교시절 수학을 못해서 문과를 택했고, 영문과는 시험점수에 맞춰 선택한 진로였다. 그런 그가 대학원에서 언어학에 매료됐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학원에서 코딩을 배워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미국 예일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속한 해스킨스 연구소는 언어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등을 융합한 세계적인 음성학 연구소. 이곳의 연구원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수학과 코딩을 익힌다. 그도 독학으로 수학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14년간 해스킨스 연구소에서 근무한 뒤 모교의 교수가 된 그는 언어공학연구소(NAMZ)부터 꾸렸다. NAMZ는 ‘Novelty at MediaZen’(미디어젠의 새로움)이라는 뜻으로, 자신처럼 수학을 배워 새로운 길을 걷는 문과생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연구원은 영문과 국문과 등 100% 인문계생들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일대일로 학생을 앉혀놓고 수학을 가르쳤다. 음성학 수업시간에도 수학과 코딩을 가르쳤다. 그 결과 NAMZ는 음성인식기술 분야에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특허를 여러 건 보유하게 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탑재된 음성인식 시스템이 이 연구소가 개발해 미디어젠이 상품화한 제품이다. 그는 “인문계 학생들이지만 어떤 컴퓨터공학자들보다 기술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문과생이 왜 수학을 배워야 하나.

“지금은 수학과 코딩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두 눈이 있는 사람에게 수학은 세 번째 눈을 준다. 미국 통계를 보면 수학을 활용하는 직업이 연봉도 더 높다. 디지털디바이드가 현실화하고 있다. 인문계에는 수학이 적성에 안 맞아 온 여학생이 많다. 여학생이 수학과 친하게 해주는 것은 남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귀국 후 인문계의 처참한 현실에 안타까웠다.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이 모두 로스쿨, 고시, 공사,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수학과 코딩을 가르친 후 인문계 졸업생들도 다양한 진로를 택하고 있다. 삼성SDS, 일본 미쓰비시 AI연구소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매사추세츠공대(MIT), KAIST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수학은 인문학 자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까.

“심리학, 사회학, 한문학, 국문학 모두 코딩과 AI를 응용하면 전에 볼 수 없던 획기적인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 분야다. 미생물, 암 연구 분야는 원래 수학이나 코딩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였다. 그런데 요즘 네이처 사이언스에는 바이오 분야에 AI와 머신러닝이 적용된 훌륭한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 수학은 왜 어려운가.

“우리의 수학교육은 수학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필요한지 말을 안 해준다. 내 삶에 유용하고 필요한 수학을 해야 흥미를 느낀다. AI에 필요한 행렬과 벡터, 미분, 통계의 개념은 6개월만 공부하면 누구나 다 이해한다. 그런데 학교교육은 줄 세우기 위해 비비 꼰 수식계산에만 얽매여 있다. 예일대에서 14년 동안 공부했고, 요즘에도 최신 수학을 매일 2시간씩 공부하는 나도 수능 수학시험을 보면 20∼30점밖에 못 맞힐 정도다.”

남 교수는 “한 우물을 파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한 사람이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을 하면 융합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융합은 한 사람 안에서 이뤄져야 제대로 성공한다”며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심리학, 인지과학, 컴퓨터공학을 배웠고 이제는 경영까지 한다. 우리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호성 교수#수학#코딩#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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