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신소재를 찾아라”… 주목받는 ‘극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선진국들 ‘극한 연구’에 매진
미국, 고출력 레이저 장비 등 갖춰… 中은 6년 전 ‘초고압 연구소’ 건립
과학-에너지 산업 발전 이끌어
섭씨 3300도서 견디는 ‘텅스텐’, 핵융합발전 실험에 쓰일 예정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75t 엔진’의 성능시험장면. 로켓엔진은 초고온, 초고압의 극한 환경에서 동작한다. 극한과학이 발전할수록 항공우주분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75t 엔진’의 성능시험장면. 로켓엔진은 초고온, 초고압의 극한 환경에서 동작한다. 극한과학이 발전할수록 항공우주분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수천 도 이상의 고열을 견딜 수 있는 특수소재, 수만 기압 이상의 압력을 낼 수 있는 특수실험시설. 절대영도(영하 273.15도)에 가까운 초저온 냉각기술.

일상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이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이 돌파구를 이른바 ‘극한과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한과학이 주목받는 까닭은 한계에 부딪힌 과학기술을 기초 영역에서부터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극한환경에선 물질의 특성이 크게 바뀐다. 이 원리를 이용해 신소재 등 새로운 혁신을 찾을 수 있다. 에너지·산업 분야 기술을 개발할 때도 극한기술은 유용한 자원이다. 공장이나 발전소에선 가스터빈 엔진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가스저장장치 등의 사회 인프라 시설, 수소자동차 상용화에 꼭 필요한 350∼400기압의 초고압력을 견디는 수소저장용 탱크 개발도 극한기술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극한연구 분야로 꼽히는 건 ‘꿈의 에너지’로 평가받는 핵융합발전 기술이다. 핵융합발전은 현재 쓰이고 있는 원자력발전보다 4배 이상 효율이 높고 폭발 위험이나 핵폐기물 문제가 없지만 실용화하기엔 20년 이상이 필요하다. 최대 섭씨 6000만 도를 넘는 핵융합 불꽃이 걸림돌이다. 불씨를 담아 놓을 용기가 없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도넛 형태의 ‘토카막’이라는 이름의 진공용기를 만들었다. 핵융합 불꽃을 공중에 띄워놓고 계속 회전시키며 가둬두는 기술이다. 그럼에도 진공을 뚫고 전해지는 열을 막기 위해 고효율 내열소재 개발은 꼭 필요하다.

국내에서 개발해 운영 중인 한국형핵융합실험로(KSTAR)는 토카막 내부에 열에 강한 탄소타일을 붙였다. 탄소는 섭씨 2000도 정도까지 견딜 수 있지만 핵융합 과정에서 나온 이온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므로 보통 600도 정도까지만 허용한다. 이는 적잖은 걸림돌이다. 방열타일에 더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으면, 수백만 도까지 올라가는 핵융합 불꽃의 온도도 비례해서 높일 수 있어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데 그만큼 더 유리해진다.

이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7개 국가가 프랑스에 공동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에는 열차단 타일로 섭씨 3천300도까지 견딜 수 있는 텅스텐을 쓸 계획이다. 홍석호 국가핵융합연구소 DEMO기술연구부장은 “초고열은 물론 불꽃 이온 등의 성질 들을 모두 고려해 다양한 조건에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한연구는 특히 항공우주, 군사과학기술 분야에도 더없이 유용하다. 음속의 몇 배가 넘는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하려면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고온에 견딜 수 있는 첨단 신소재는 필수다. 현재 국내에선 대학 실험실 등을 중심으로 우주탐사선 내열 기술, 지구 재진입체 방열 기술 등을 일부 연구 중이다.

극한과학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과학기술 선진국의 경우 예외 없이 관련분야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초고온, 초고압 분야 기초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고출력 레이저 장비,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초고압 발생 장치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중국도 2012년 ‘초고압연구소’를 독자적으로 건립하고 관련 분야 기초연구에 매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극한환경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지난해 12월부터 관련 연구 활성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만큼 잰걸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근우 융합물성측정센터 책임연구원은 “국내 극한연구는 해외 선진국의 1차 연구 성과를 가져와 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독자적 연구 역량 확보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극한과학#핵융합발전#토카막#한국형핵융합실험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