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로벌 OTT의 성패, 자막 품질이 좌우한다

  • 동아닷컴
  • 입력 2017년 5월 24일 1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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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장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새로운 콘텐츠가 매 시간마다 전 세계 고객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10시에 방영한 드라마는 동남아 시간으로 11시에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TV 방송에서? 아니다. 실시간 채널로는 콘텐츠의 빠른 배포를 기대하기 힘들다.

답은 온라인 VOD 서비스다.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OTT(Over The Top 의 약자,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비디오 서비스를 지칭)'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2~4시간만에 동남아 시장으로 전달되고 있다>(출처=IT동아)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2~4시간만에 동남아 시장으로 전달되고 있다>(출처=IT동아)

여전히 아시아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OTT 서비스들은 불법 스트리밍 또는 불법 다운로드 콘텐츠와 경쟁을 하고 있다. OTT 서비스가 그들보다 콘텐츠를 늦게 제공한다면, 사용자 입장에선 비싼 돈을 주고 콘텐츠를 사 볼 이유가 없다. 이미 볼 사람들을 다 보게 된 후 서비스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때문에 OTT 서비스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빠르게 잘 만들어진 자막'이다. 영어권 자막을 이해하는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그리고 일부 인도네시아 사용자에게 빠르게 잘 만들어진 영어 자막을 제공한다면 OTT 서비스는 불법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우위에 설 수 있다. 사용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콘텐츠를 빨리 보는 것이다. 가격은 생각보다 서비스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빠르게 자막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막을 빠르게 잘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도 자막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사용자들은 콘텐츠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자막을 소홀히하면 해외 사용자들에게 피땀 흘려 만든 콘텐츠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막 품질 문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넷플릭스

작년 초 글로벌 진출을 선언한 넷플릭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각 나라에 맞는 콘텐츠 수급과 자막 제공이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중심의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던 넷플릭스는 2015년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며 자막과 더빙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렇게 만든 계기가 있다.

<2013년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던 브레이킹 베드의 캡쳐 화면 (사진=너드오필즈)>(출처=IT동아)
<2013년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던 브레이킹 베드의 캡쳐 화면 (사진=너드오필즈)>(출처=IT동아)

사실, 4년 전만해도 넷플릭스는 비디오와 오디오에만 신경쓰고 자막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사용자가 늘고, 다양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용자가 가입하면서 자막에 대해 관심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곪았던 문제가 터졌다.

2013년 말, 너드오필즈라는 블로그 미디어가 '넷플릭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라는 글을 통해 넷플릭스의 자막 품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지적했다. 수백명 이상의 사용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해당 기사에 넷플릭스를 사랑하지만 형편없는 자막 때문에 콘텐츠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이 글은 큰 화제가 되었고,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

넷플릭스는 자막 품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PV(Netflix Preferred Vendor)에 자막을 담당하는 'Timed Text'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협력사를 통해 자막의 퀄리티를 관리하는 기준을 만들게 된다.

특히 자막 제작 업체가 제공한 자막 가운데 자막 품질에 문제가 생겨 재작업을 하게 될 경우를 측정해 '리딜리버리(Redelivery)'라는 평가 항목을 만들었다. 재작업 비율이 5%가 넘어갈 경우 해당 업체는 기존의 기여도와 관계 없이 거래선에서 퇴출할 정도로 자막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BBC, 자막만 연구하는 팀이 있어

영국 BBC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전 세계에 가장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회사다. 이 업체 역시 넷플릭스처럼 자막에 대한 연구를 진지하게 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콘텐츠의 자막 제공 속도에 따른 고객 만족도에 대한 실험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BBC가 공개한 자막 제공 속도에 따른 사용자 만족도>(출처=IT동아)
<BBC가 공개한 자막 제공 속도에 따른 사용자 만족도>(출처=IT동아)

심지어 BBC는 콘텐츠 성격에 따라 자막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까지도 분석했다. 'Block(일반 자막)', 'Scrolling', 'Speech(캡션에서 많이 쓰이는 방식)'에서 최적의 자막 속도(WPM, Word Per Minutes 분당 노출하는 단어를 의미한다)는 어느정도인가 하는 것까지 조사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막을 단순히 콘텐츠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사업자에겐 자막은 콘텐츠를 이해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퀄리티를 결정하고 서비스의 생명도 좌우하는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2016년 1월 스웨덴 방송에서는 스웨덴 교육부 장관 회의에 키즈 채널의 자막을 송출해 콘텐츠 시청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출처=IT동아)
<2016년 1월 스웨덴 방송에서는 스웨덴 교육부 장관 회의에 키즈 채널의 자막을 송출해 콘텐츠 시청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출처=IT동아)

넷플릭스가 최근 태국어 현지화와 관련해서 자막의 품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글로벌 서비스를 꿈꾸는 OTT 서비스 업체라면 응당 자막 자체의 품질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아직도 자막을 인터넷만 검색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파일로 치부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글로벌 서비스에서 성공하는 OTT들은 이미 자막의 품질이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고 있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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