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등 포괄적 단어 사용… ‘연구개발’은 뒤로 밀려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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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과학기술공약 보니…

18, 19대 대선 주요 후보들의 과학기술 관련 공약을 모아 만든 ‘키워드맵’이다. 지도상에서 크기가 클수록 자주 등장한 단어다.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연관성 높은 단어가 밀집해 있음을 뜻한다. 18대 대선(왼쪽)과 달리 19대 대선 공약에선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18대 대선에서 중앙에 있던 ‘연구개발(R&D)’이나 ‘대학’ 등의 단어는 19대 대선에서 변두리로 밀려났다. ‘과학기술’과 ‘출연연’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과학기술이 그 자체의 중요성보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언급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분석에는 ‘브이오에스 뷰어(VOS Viewer)’를 사용했다.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 대선 후보들과 어떻게 다를까. 본보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미래정보연구센터와 함께 대선 주요 후보들의 과학기술 공약을 바탕으로 ‘핵심단어 지도(키워드맵)’를 작성했다. 분석 결과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다루는 경향이 18대 대선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대선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 ‘스마트’ 등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아울러 ‘규제 완화’와 ‘안전’ 등이 과거에 비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 분석 방법과 장단점

분석을 위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의 공약집에서 과학기술과 연관된 단어들의 빈도와 상관관계를 분석해 지도를 그렸다. 지도상에서 크기가 클수록 자주 등장한 단어다.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연관성 높은 단어가 밀집해 있음을 뜻한다. 이를 통해 선거 공약에서 ‘연구개발(R&D)’ 등의 단어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비교를 위해 18대 대선 후보인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약집에서 과학기술 분야 단어를 추출한 키워드맵도 만들었다.

키워드맵 분석은 핵심 단어의 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고, 후보 및 시기별로 비교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핵심 단어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을 과학기술 관련 핵심 단어로 볼 수도 있지만, 분석자에 따라서 ‘기업’ 용어로 보고 빼놓을 수도 있다. 분석의 정확성을 위해 동아사이언스 기자, 박진서 KISTI 선임연구원, 엄수홍 연구원(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전공) 등이 참가해 오류를 최소화했다.

○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수단?


19대 대선 공약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과학기술’보다 중요하게 다뤄졌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집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장은 총 1129개였는데, 이 중 가장 많이 쓰인 두 단어는 ‘산업’(99회)과 ‘4차 산업혁명’(80회)이었다. 두 단어는 연관된 다른 단어도 많아 지도에서 가장 짙은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18대 대선 키워드맵에서 중앙에 위치했던 ‘연구개발(R&D)’ ‘대학’ 등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과학기술’ ‘출연연’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대신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이 부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후보들의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후보는 과학기술을 일자리, 경제 공약에 포함시켜 다뤘다. 과학도 인문학이나 예술처럼 독자적인 분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연구원은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헌법조항이 있는데, 정치권이 그 사고체계를 못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학문화, 인간 존중, 소통, 사회적 합의, 참여, 지속 가능성, 다양성 같은 단어들이 중심에 오도록 헌법에서 과학기술 관련 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래지향적 단어 자주 등장, 규제 완화 의지 담겨

키워드맵에는 ‘4차 산업혁명’ ‘스마트’(49회) 등 아직은 개념이 모호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포괄적으로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19대 대통령 선거 정당별 과학정책 분석’ 보고서에서는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나,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와 기회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진단이나 철학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규제’(57회)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인공지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공공데이터 규제 해소”(문재인 후보), “연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규제”(안철수 후보) 등 규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줄이겠다는 공약이 다수다. 다만 심상정 후보 공약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등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이 포함됐다.

○ ‘안전’ 관련 단어가 새로운 축으로 떠올라

18대 대선과 비교해 19대 대선에선 ‘안전’(53회)이라는 단어가 과학기술 키워드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경주 지진, 미세먼지 사태 등을 겪으며 재난을 막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편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공약이 주목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유승민 후보의 “지진 등 재난재해에 대비한 노후시설 안전 대책” 공약이나 “안전하고 효율적인 저탄소 에너지 체제 구현을 위해 에너지기후부 신설” 공약 등이 있다.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
#4차 산업혁명#대선후보 과학기술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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