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창고 문이 열리자 수많은 돌이 쌓인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모양은 물론이고 색깔도 가지각색. 회색부터 갈색, 검은색까지 다양한 종류가 쌓여 있었다.
흔한 돌덩어리 같지만 연구진은 이 돌덩이들을 애지중지 다뤘다. 보석을 다루듯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이고, 목록을 만들어 관리했다. 이곳에 쌓여 있는 돌의 총 무게는 300kg.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충남대, 경상대 등에서 모인 공동연구진 14명이 7월 30일부터 8월 12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백두산 인근 지역에서 채취해온 암석 샘플이다. 11월 2일 대전 유성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찾아 백두산 곳곳에서 채취해온 암석의 비밀을 들었다. ○ 물에 뜨는 돌 ‘부석’에 숨은 백두산의 비밀
흔히 백두산을 활동이 정지한 ‘휴화산’으로 알고 있지만 지질학계에선 백두산을 위험한 ‘활화산’으로 구분한다. 백두산이 마지막으로 분화한 것은 1903년. 분화 주기가 100년 정도라 내일 당장 분화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질학자들은 새로운 백두산 폭발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어떻게 분화했는지 지하 마그마의 구조를 통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백두산 지역에서 암석을 캐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진은 최근 물에 집어넣으면 스티로폼처럼 둥둥 떠오르는 돌, 부석(浮石)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석의 공기 함량은 60∼70%. 돌 속에 숨은 기공(氣孔)이 과거 백두산이 폭발할 때 정보를 담고 있다.
3년째 백두산을 탐사하고 있는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손영관 교수는 같은 대학 기초과학연구원 김기범 교수와 공동으로 부석 속 기공으로 백두산 폭발의 비밀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화산 분화는 보통 마그마 내부의 가스가 터지면서 폭발적으로 이뤄진다. 연구팀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로 백두산 부석 속 기공을 원형과 타원형,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손 교수는 “당시 적어도 두 단계에 걸쳐 폭발이 일어났다는 뜻”이라며 “이런 작용이 백두산의 폭발력을 키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진이 채집한 암석 중엔 지각을 30km 이상 시추해야 만날 수 있는 ‘맨틀’ 조각도 있었다.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터지면서 주변 암석을 덩어리째 끌고 올라온 ‘포획암’ 덕분이다. 이 암석은 백두산의 심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마그마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볼 수 있다.
○ 지하 7km 시추…‘엄마(UMMA)’ 프로젝트 발족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지하 7km까지 파고 들어가 마그마를 캐 보는 것이다. 2017년까지 지진파 탐사 장비를 이용해 안전한 시추 지점을 찾는 기초 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손 교수는 “최근 중국당국의 탐사 거부로 연구 진척이 느리다”라면서 “더 자세한 연구를 위해선 북한과의 공동 연구도 필요한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두산이 폭발한 이후 화산 분출물은 대부분 동쪽, 즉 북한 쪽에 쌓여 있다.
이윤수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최근 중국과 영국, 일본, 미국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대륙과학시추프로그램(ICDP)에 북한 쪽 백두산을 시추하자는 제안서를 냈다. 프로젝트 이름은 ‘엄마(Ultra deep Monitoring for Magma Activity)’.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시추에 성공하면 분화 가능성이 큰 대형 화산 속 마그마까지 구멍을 뚫은 최초의 사례가 된다.
1993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북한 지역 백두산을 연구했던 독일 화산학자 한스울리히 슈밍케 독일 킬대 화산학과 교수는 “모두가 백두산이 다시 폭발할 것을 알고 있지만 중요한 건 언제, 어떻게 폭발할 것인지 아는 것”이라며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두산의 비밀을 품은 각종 암석 이야기는 과학동아 12월 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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