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이어진]하늘과 바람과 별과 조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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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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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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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과 남극고래. 그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색의 조합이었다. 어쩌다 운 좋은 날이면 세종기지 앞바다에서 고래를 볼 수 있었다. 저만치 숨 쉬러 잠깐 올라왔다가는, 승리의 브이(V)자 꼬리인사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그 뒷모습마저도 행운이었다. 진료실에 돌아와서는 ‘고래의 꿈’ 노랫말을 가만히 읊조리곤 했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1959년 12월 1일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이 체결됐다. 냉전시대 최초로 미국, 소련을 포함한 12개국이 한자리에 모여 만든 평화협정이었다. 조약은 남극에서의 군사활동을 금지하고,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없게 하였는데, 57년이 지난 지금은 50개국이 가입해 상주 기지 40여 개가 ‘남극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그곳에서 겨울을 난다.

 19세기 고래잡이와 물개잡이로 얼룩졌던 남극은, 20세기 남극점 정복 및 기지건설과 같은 탐험과 개발의 시대를 지나, 21세기인 지금은 국력의 경연장이 되었다. 평화협정이었던 남극조약은 이후 남극환경보호의정서(마드리드 의정서)와 생물자원협약, 물개협약, 광물자원협약 등이 추가로 발효 또는 채택되면서 ‘남극조약체계’가 됐다.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 역시 1967년 냉전시대에 체결된 일종의 평화협정이다. 현재까지 100여 개국이 가입해 ‘우주헌법’이라 불린다. 남극조약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으로만 사용하며, 주권행사가 불가능하다. 달을 비롯한 천체의 개발과 자원 활용을 공동으로 할 것도 명시했다.

 하지만 부속협정인 일명 ‘달 조약’에는 13개국만 가입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우주개발국은 ‘달 조약’의 가입을 유보하고 있다. 자유로운 달 사용이 제한될 수 있어서다. 그런 가운데 작년 말 미국은 상업 우주활동과 자원 채굴을 가능하게 하는 ‘우주법 2015’를 통과시켰다. 일본은 달 유인기지 건설계획을 공표했고, 오스트리아의 한 우주기업은 ‘스페이스 클럽’ 위주로 운영되는 우주조약을 비판하며 우주 공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우주조약의 시초는 1960년대. 미래학자 짐 데이터 박사는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학생들에게 미래 인류를 위한 법을 만들어보도록 했다. 일종의 ‘법(法)의 미래’ 수업이었던 셈인데, 기존 법률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던 학생들은 화성에 법을 만들어 보라는 교수의 조언에 국적, 이주규칙, 신(新)국가수립, 평화수호, 환경오염과 재난, 원주민(외계인)과의 관계 설정 등 각종 법과 정치제도에 대해 열린 생각들을 쏟아냈다.

 남극 영유권 주장과 광물자원활동은 금지되었지만 남극조약으로 이를 완전히 못 박지 못했다. 2048년 이후 재논의가 가능하도록 이를 유예시켰다는 점에서, 오늘의 봉인이 미래에는 뜻하지 않게 풀려버릴 가능성도 있다. 달 조약 역시 남극조약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흘러갈 것이리라.

 준비해야 한다. 남극에서 우주까지. 이들 모두 평화를 앞세우지만 강대국 중심의 ‘럭셔리 조약’인 것도 틀림없다. 남극기지를 운영하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은 29개국뿐이고, 우주조약은 실제 우주개발 실적이 있는 13개국 위주로만 논의된다. 우리나라 남극기지 연간 운영비는 150억 원 남짓, 인공위성이나 로켓 개발은 여기에 ‘0’이 하나 또는 둘 더 붙는다.

 남극과 우주 모두 가질 수 없는 곳, 주인이 없는 땅이다 보니 국가의 헌법과는 다른 규칙을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 지금에 이르렀다. 국제적 약속의 실효성 테스트이자, 여러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류의 지향과 미래 가치가 녹아있다는 점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에 덧씌운 이 조약들은 흡사 시인의 한 편 노래이기도 하다.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이 가판대의 생수가 된 오늘이다. 태양계 조약, 화성법, 인공행성법, 우주 시공간에 관한 조약, 사이버국가 협약 중 일부는 분명 우리 후손들에게는 현실이 될 테다. 100년쯤 뒤에는 달이나 진짜 화성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12월의 초입, 남극조약을 핑계 삼아 고래 등 타고 저 멀리 우주로 항해를 떠나 본다.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남극#남극고래#남극조약#우주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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