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팡티에 교수 “크리스퍼 개발했을 때 가장 먼저 난치병 환자 치료 떠올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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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퍼’ 최초로 개발 샤르팡티에 교수가 말하는 ‘유전자 교정치료’

DNA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최초로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총괄책임교수. 샤르팡티에 교수는 10월 13일 본지 기자와 만나 “크리스퍼 활용 분야 중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인간 유전자 교정 치료”라고 밝혔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DNA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최초로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총괄책임교수. 샤르팡티에 교수는 10월 13일 본지 기자와 만나 “크리스퍼 활용 분야 중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인간 유전자 교정 치료”라고 밝혔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크리스퍼(CRISPR-Cas9)’를 개발했을 때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가장 기대하는 분야는 단연 인간 유전자(DNA) 교정치료다.”

 DNA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이하 크리스퍼)를 2012년 최초로 개발해 ‘노벨상 영순위’로 불리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총괄책임교수(48·독일 훔볼트대 명예교수)는 10월 13일 서울 연세대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지난달 12∼14일 열린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회장 최준호) 정기학술대회에 기조강연 연사로 초청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크리스퍼는 최근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핫’한 기술로 꼽힌다. 질병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잘라 없애거나 회복시킬 수 있어 다양한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기존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었지만 수백 배 이상 정밀하고 사용도 간편해 유전자 교정치료의 상용화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누군가 크리스퍼로 유전병을 치료받게 된다면 매우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 에이즈도, 암도 치료 가능


 유전자 교정치료 대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는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겨져 온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다.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인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7회 치료 중 HIV의 내성에 관한 국제워크숍’에서 에이즈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교정치료의 2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에이즈는 면역세포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발병하는데, 선천적으로 ‘CCR5’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 상가모 연구진은 에이즈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제거한 뒤 다시 체내에 투여했다. 그 결과 환자의 체내에서 HIV의 번식과 HIV가 잠적해 있는 저장소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계에서는 이미 크리스퍼로 에이즈를 완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퍼를 활용해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 중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상가모 측에선 임상시험을 통해 초기에 치료받은 사람들 중에는 현재 약을 끊은 사람도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이 효능은 1세대 유전자 가위인 ‘징크 핑거’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크리스퍼를 활용하면 유전자 교정치료 효과가 더 탁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퍼는 암을 정복하는 새로운 무기로도 주목받는다. 6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의 암 치료를 위한 크리스퍼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암 환자의 혈액에서 추출한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해 암세포 공격 능력을 높인 뒤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7월에는 중국 쓰촨대 병원 연구진도 크리스퍼를 활용해 폐암 환자 10명을 치료하는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 “한국은 세계적 크리스퍼 치료기술 보유, 잠재력 높아”

 샤르팡티에 교수는 프랑스 출신으로 피에르에마리퀴리대(UPMC) 생명과학부를 거쳐 파스퇴르연구소와 UPMC에서 각각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크리스퍼를 개발한 공로로 톰슨로이터가 선정한 ‘2015 노벨 화학상 수상자 예측’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에는 독일 정부가 5년 동안 500만 달러(약 57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알렉산더 훔볼트 교수상’도 수상했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대학원 시절을 포함해 25년간 5개국, 9개 연구소를 떠돌며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했다”며 “크리스퍼를 발견하기 2년 전에는 레스토랑을 차릴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연구비가 다 떨어진 상태에서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e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며 “운 좋게 그와 함께 연구하게 됐고 크리스퍼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한국도 세계적인 수준의 유전자 교정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국내에서는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 김진수 단장 등이 크리스퍼 석학으로 꼽힌다. 김동욱 교수는 유전자 교정치료가 혈우병, 헌팅턴병 등 희귀 유전병에 적용될 수 있음을 밝혀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프로토콜’에 발표했다. 김진수 단장을 포함한 국내 공동연구진은 황반변성(안구질환)과 리소좀축적증(중추신경장애), 샤르코마리투스병(근육위축병) 같은 각종 난치성 유전병에 대한 유전자 교정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노벨상에 대해선 가급적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의 연구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결과는 미래가 말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송준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샤르팡티에 교수#에이즈#암#크리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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