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무어의 법칙, 최적화로 승부하는 인텔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9월 1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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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는 논문을 통해 '반도체의 정밀도는 18개월을 주기로 2배씩 향상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이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이름 하에 지난 반세기 동안 반도체 업계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인텔을 포함한 모든 반도체 업체들이 반도체의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무어의 법칙은 한치의 어긋남 없이 지켜졌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이 더 이상 미세화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한 10나노 대에 점어듬에 따라 반도체 정밀도 향상은 한계에 부딪쳤고, 결국 무어의 법칙은 폐기되고 만다.

왜 무어의 법칙은 최후를 맞이한 것일까. 10나노 미만의 반도체 직접회로의 설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인텔은 현재 14나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반도체 정밀도를 10나노, 7나노에 이어 5나노 수준까지 정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무어의 법칙이 폐기된 이유는 경제적인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반도체의 정밀도를 향상시키는데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밀도가 향상된 반도체를 조금만 내다 팔아도 충분히 이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정밀도를 조금만 향상시켜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인텔은 1년 반마다 공정을 미세화했던 전략을 포기하고, 14나노 공정을 3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텔이 반도체 정밀도 향상에 어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보고서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컨설팅 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트래티지에 따르면 인텔이 10년 전 65나노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1600만 달러 내외였다. 반면 14나노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그 9배인 1억 3,200만 달러에 이른다.

무어의 법칙을 포기함에 따라 인텔이 경쟁사를 상대로 보유하고 있었던 반도체 미세화에 따른 비교 우위는 사라지고 말았다. 인텔은 원래 경쟁사보다 1~2단계 앞선 공정 미세화를 통해 반도체 업계의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인텔이 14나노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삼성, 퀄컴, AMD 등 경쟁사 역시 14나노 공정을 자사의 반도체에 도입했다.

때문에 인텔이 내놓은 전략이 최적화(Optimization)다. 8월 31일 인텔은 최적화 전략에 따른 차세대 프로세서(CPU) '7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코드명은 '카비레이크(Kaby Lake)'다.

7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카비레이크' (사진=인텔)
7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카비레이크' (사진=인텔)

틱톡 대신 'PAO'

원래 인텔의 프로세서 전략은 '틱톡'이다. 틱은 반도체 공정 미세화다. 반도체 직접회로의 정밀도를 향상시켜 발열과 전력소모를 줄이고 처리 능력을 약간 향상시키는 것이다. 톡은 마이크로 아키텍처(반도체 설계도)를 교체하는 것이다. 교체를 통해 처리 능력을 대폭 향상시켰다. 무어의 법칙이 건재한 동안에는 틱톡 전략이 칼 같이 지켜졌다. 가장 최근에 틱톡 전략으로 만들어진 프로세서가 아이비브릿지(3세대)와 하스웰(4세대)이다. 아이비브릿지는 22나노 공정을 도입했고, 하스웰은 하스웰 아키텍쳐를 도입했다.

브로드웰(5세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무어의 법칙을 지키기 어려워진 인텔은 틱톡 대신 미세화(Process), 교체(Architecture), 최적화(Optimization) 전략을 도입했다. 이른바 PAO 전략이다. 미세화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를 의미한다. 교체는 마이크로 아키텍처 교체를 뜻한다. 최적화는 반도체가 지닌 여분의 능력을 모두 끌어내는 것이다.

P에 해당하는 프로세서가 브로드웰(5세대)이다. A에 해당하는 프로세서가 스카이레이크(6세대)다. O에 해당하는 프로세서가 바로 어제 출시된 카비레이크(7세대)다.

카비레이크의 5가지 특징

카비레이크의 특징은 크게 5가지다. 프로세서 성능 향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 강화나 입출력 기능(I/O)의 강화 등으로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부가 기능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향상된 성능: 카비레이크는 향상된 프로세싱 기술과 실리콘 최적화 기술을 도입해 스카이레이크보다 한층 뛰어난 성능을 제공한다. 특히 멀티태스킹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4K 동영상을 인코딩하면서 영화 감상, 웹 서핑, 문서 작업 등의 일반적인 작업을 아무런 지장없이 처리할 수 있다. 1분 동안 1,400장에 이르는 사진을 보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장 그래픽 수준을 뛰어넘은 그래픽 처리 능력: 카비레이크에 탑재된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인텔 HD 620, 615)는 최신 3D 게임인 '오버워치'를 HD 해상도(1,280x720)로 쾌적하게 실행할 수 있다(현재 해외발 벤치마크에 따르면 전원 연결시 60프레임에 조금 못 미친다고 한다). 또 그래픽 프로세서에 탑재된 동영상 디코딩(재생) 기능을 강화해 차세대 동영상 코덱인 HEVC로 제작된 4K 동영상을 원활하게 재생할 수 있다(10비트 디코드 기능 채택). 동영상 인코딩(제작) 기능도 강화되었다. 별도의 외부 그래픽 프로세서의 도움 없이 여러 개의 4K 동영상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 VP8 코덱도 지원하기 때문에 고해상도 360도 영상(VR 영상)도 쾌적하게 감상 가능하다.

윈도우10은 내장 그래픽과 외장 그래픽의 성능을 결합해서 3D 처리 능력을 향상시키는 '멀티어댑터' 기술을 지원하는 만큼 카비레이크의 내장 그래픽 성능 향상은 사용자들에게 체감 상 큰 차이를 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편의 기능 도입: 카비레이크는 USB-C 형태의 썬더볼트3 기술을 정식 지원한다. (내부 인터페이스는 썬더볼트3인데, 외부 형태는 USB-C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초당 40Gb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고, 2개의 4K 디스플레이에 60프레임으로 영상을 출력할 수 있다(이 경우 USB-C to DP 케이블이 필요하다). 외부 저장장치에 100W의 전력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별도의 전원 없이 NAS나 모니터를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윈도우 헬로(MS의 얼굴 인식 보안 기술)를 정식 지원해 안면 인식 카메라가 탑재된 노트북을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향상된 전원 관리 기술: 카비레이크가 탑재된 노트북은 보다 긴 배터리 사용시간을 보여준다. 향상된 배터리 관리 기술을 도입해 대기 시간 동안 전력소모를 최소화했고, 고해상도 동영상 재생시 소모되는 전력도 최소화했다. 특히 M, Y 모델의 경우 한 번 충전으로 하루 종일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 소모가 적다(4.5W 내외. 스마트폰용 SOC와 비슷한 수준).

차세대 I/O 지원: 카비레이크는 3세대 PCI 익스프레스를 지원하기 때문에 초당 8GT의 속도로 그래픽 프로세서 및 최고급 SSD(NVMe)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참고로 2세대 PCI 익스프레스의 속도는 초당 5GT였다)

이외에도 사용자가 알아둬야 할 카비레이크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카비레이크는 윈도우10 전용(+맥OS 시에라) 프로세서라는 것이다. 카비레이크로 구동되는 PC, 노트북, 태블릿PC에는 윈도우10만 설치할 수 있으며, 그 아래급 윈도우는 설치할 수 없다.

이번에 공개된 카비레이크는 노트북, 태블릿PC용 모바일 프로세서다. M, Y, U 모델로 구성되어 있다. M은 무소음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위한 프로세서로, 팬 없이도 발열을 처리할 수 있는 팬리스 프로세서다. TDP는 4.5W로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Y 프로세서 역시 초저전력에 초점을 맞춘 프로세서다. TDP는 4.5W에 불과하며,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 역시 초저전력에 초점을 맞춘 인텔 HD 615다. 초소형 노트북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U 프로세서는 일반 노트북을 위한 프로세서로,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는 오버워치 등 최신 게임을 나름 쾌적하게 실행할 수 있는 인텔 HD 620이다(출력 가능한 해상도도 615보다 조금 더 높다). TDP는 15W 수준이다.

일반 PC용 카비레이크는 내년 1월에 출시된다. 카비레이크의 후속이자 P(미세화)에 해당하는 10나노급 프로세서 '8세대 인텔 프로세서(코드명: 캐논레이크)'는 내년 말에 출시될 예정이다. 카비레이크는 올해 말 시장에 출시될 AMD의 차세대 CPU '서밋 릿지'와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서밋 릿지는 젠(ZEN) 아키텍처를 적용한 AMD의 차세대 고성능 CPU로 인텔 브로드웰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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