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자 너무 조용… 노벨상 나올 풍토 못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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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가 꼽은 5대 불가론
① 상명하복… 토론 거의 없어
② 기업주도… 기초분야 뒤처져
③ 시류편승… 장기적 안목 없어
④ 두뇌유출… 실망한 인재 해외로
⑤ 돈으로 승부… 논문 턱없이 부족

“국제 학회에 가면 한국 학생들은 조용히 있는 편이에요. 토론하는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거죠.”(A대 석사과정 연구원)

“연구실 막내이다 보니까 상명하복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어요.”(B대 박사과정 연구원)

이 같은 한국 과학계의 연구 현실에 대해 국제 과학학술지가 일침을 놨다. ‘네이처’는 1일(현지 시간) “한국은 과학 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네이처는 우선 한국이 R&D 투자 규모에 비해 논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1999년 2.07%에서 2014년 갑절이 넘는 4.29%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4년 기준 발표 논문 수(7만2269편)는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1.22%인 스페인(7만8817편)과 비슷했다.

네이처는 R&D 투자 대부분이 삼성, LG, 현대 등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에서 나온 점을 원인으로 짚었다. 산업계의 투자는 응용 분야에 국한돼 있어 특허 출원은 많아도 기초과학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2014년 R&D 투자의 75%는 기업에서 이뤄졌다.

정부의 투자도 기초과학보다는 반도체, 통신, 의료 등 응용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IBS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정치인들이 R&D 정책에서 기술 분야와 기초과학 분야를 구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조용하고 보수적인 문화도 걸림돌이라고 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연구실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인 연구자들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전 서울대 화학과 교수)은 “연구실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조용해지는 게 한국의 문화”라고 말했다.

시류에 흔들리는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꼬집었다. 올해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 9단의 바둑 대결 직후 대통령이 나서서 인공지능에 2020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점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네이처는 “단일 사례만으로 ‘인공지능이 미래’라며 곧바로 이 분야 투자를 늘리는 ‘주먹구구식 대응’을 펼쳤다”며 “한국은 아직도 ‘패스트 팔로어’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네이처는 이런 한계 때문에 한국의 많은 연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2011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과학자 중 70%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겠다고 했다’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투자 규모를 늘려도 연구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탓에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의 R&D 투자 의지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네이처는 지난달 한국이 대통령 주재로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대학의 기초과학 예산을 2018년까지 1조50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정책을 언급하며 더 많은 예산이 기초과학 R&D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네이처는 또 “IBS, 포항가속기연구소 등에서도 조금씩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IBS에서 연구하고 있는 ‘엑시온(이론상 가장 작고 가벼운 입자)’을 실제 발견한다면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노벨상#한국과학자#네이처#국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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