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원숭이 없었다면… 백혈병 치료제 빛 못볼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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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도움되는 ‘효자 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의 모습(왼쪽 사진부터). 이 동물들은 사람과 함께 ‘대형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유인원은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의 모습(왼쪽 사진부터). 이 동물들은 사람과 함께 ‘대형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유인원은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의 해’가 밝았다. 불(火)과 관련된 병(丙)은 붉은색을 상징하고 신(申)은 원숭이를 뜻하니 붉은 원숭이라는 의미가 탄생했다. 을미년(2015년)의 상징이었던 청양(靑羊)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인 것과 달리 붉은 원숭이는 실제 존재할 뿐 아니라 인간과도 가깝다. 머리와 어깨 언저리 털이 불그스름한 ‘붉은털원숭이(Macaca mulatta)’는 개체가 많고 실험 동물로도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원숭이가 자연 발효된 포도를 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포도주의 유래라는 설화가 있을 만큼 영특한 동물로 알려진 원숭이. 원숭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원숭이? 유인원? 영장류?


영화 ‘혹성탈출’의 주인공을 원숭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엄연히 침팬지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침팬지는 원숭이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라는 잘못된 지식까지 가세하면 혼란은 더 커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선 가장 큰 개념인 ‘영장류(靈長類)’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장류는 영장목(靈長目)에 속하는 포유류를 뜻하는 말. 인간은 물론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흔히 영장류는 엄지와 다른 손가락을 마주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또 몸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뇌를 갖고 있다. 엄지발톱이 평평하고 보통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배는 것도 영장류의 특징으로 꼽힌다. 수컷의 고환이 흔들린다는 점도 영장류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다음으로 원숭이와 유인원을 구분해 보자.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꼬리의 존재다. 꼬리가 있다면 원숭이, 꼬리가 없다면 유인원으로 분류한다. 사람은 꼬리가 없으니 유인원에 포함된다. 또 몸집이 크다는 점에서 ‘대형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대형 유인원은 사람을 포함해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로 4속(屬)뿐이다. 이 중에서도 침팬지는 사람과 함께 사람족(Hominini)에 속해 진화적으로나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깝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DNA)는 98.8%가 일치한다. 1.2%의 차이는 사람과 침팬지가 6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분리돼 나와 독립적으로 진화하며 벌어진 결과다.

동물 실험에서 빠질 수 없는 영장류

영화 ‘혹성탈출’의 프리퀄 시리즈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투여받은 침팬지 ‘시저’가 실험실을 탈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연구자들은 영장류 동물을 이용하는 실험이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장은 “쥐나 개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문제가 없었더라도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며 “영장류 실험을 거치지 않았다가 비극을 낳았던 탈리도마이드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 후반 임신부의 입덧 방지용으로 판매된 약품으로 신생아의 팔다리가 극도로 짧아지는 기형을 유발해 사용이 금지됐다.

반대로 영장류 실험이 없었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약품도 있다. 백혈병 치료제로 쓰이는 ‘글리벡’이다. 김 센터장은 “개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심해 사실상 전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뻔했다”며 “뜻밖에도 영장류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사람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이후 환자들에게 널리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이 쥐나 개를 이용한 실험보다 정확하고 의미가 있는 까닭은 인간과 원숭이가 공유하고 있는 해부생리학적 특징이 많기 때문이다. 체내 대사에 관여하는 체내 운반체와 수용체만 하더라도 사람과 원숭이는 95%가 같지만 쥐는 80% 정도만을 공유한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런 유사성 때문에 미국에서는 신약을 내놓을 때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영장류 실험을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장류 실험에서는 ‘붉은털원숭이’가 핵심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한 동물은 침팬지지만 왜 원숭이를 실험에 이용할까. 세계적으로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대형 유인원을 실험동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이 크다. 2010년 유럽연합(EU)이 대형 유인원을 동물 실험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새 ‘동물보호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미국 또한 2015년 6월 침팬지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해 실험동물로 쓸 수 없게 했다.

대형 유인원과 달리 붉은털원숭이는 1940년대 이전부터 실험동물로 널리 쓰여 왔다. 다 자라도 키가 60cm에 몸무게는 5.5∼11kg에 불과해 관리가 쉽다는 게 장점이다. 또 70년이 넘는 긴 기간 실험에 쓰이면서 다양한 연구 결과와 유전자 등의 정보가 축적돼 대체하기 어려운 실험동물로 자리 잡았다.

김 센터장은 “건강한 사람도 접종받는 백신은 안전성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만큼 영장류 실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동물보호단체의 압박 때문에 세계적으로 붉은털원숭이 공급이 부족하다”며 “붉은털원숭이의 가치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혹성탈출#영장류#침팬지#동물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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