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가두면 문 여는 방법 배워 탈출… 사람과 치열한 두뇌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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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센터 원숭이 사육실 가보니

사람과 붉은털원숭이의 손을 비교한 사진. 엄지와 다른 손가락 끝을 맞댈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원숭이를 포함하는 영장류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국가영장류센터 제공
사람과 붉은털원숭이의 손을 비교한 사진. 엄지와 다른 손가락 끝을 맞댈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원숭이를 포함하는 영장류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국가영장류센터 제공
사육실에 다가가자 연분홍빛 얼굴에 불그스름한 털을 가진 원숭이 두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짙은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이 빛났다. 병신년(丙申年)의 주인공 붉은털원숭이다.

지난해 12월 4일 국내에서 붉은털원숭이를 가장 많이 기르고 있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를 찾았다. 이곳에는 최고령인 1988년생 원숭이를 비롯해 100여 마리의 붉은털원숭이가 살고 있다.

키 60cm, 몸무게 5.5∼11kg의 작은 체구 탓에 원숭이는 아기 같았다. 사육실 문 밖에 낯선 사람이 어른거리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사육실에도 ‘사회’는 살아있어

무리 중에는 노골적으로 위협의 눈빛을 쏘아 보내는 원숭이가 있었다. 다른 원숭이에 비해 덩치가 크고 눈도 위로 치켜 올라가 남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저 원숭이가 우두머리입니다. 야생에서 붉은털원숭이는 대장을 중심으로 무리 지어 살아요. 사육실 안에서도 야생의 습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죠.”

사육실에서 만난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은 붉은털원숭이 무리에서의 서열을 소개했다. 야생과 달리 사육실 안에서 원숭이는 칸칸이 나뉜 각자의 ‘원룸’에서 지내고 있어서 서로 교류할 일이 없다. 야생에서처럼 직접 힘을 겨루는 대신에 우리를 흔드는 정도와 목소리 크기, 눈빛을 보고 서열을 정한다.

이날 사육실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지능이 5세 아이 수준인 원숭이는 특유의 영특함을 자랑하듯 툭하면 우리 밖으로 탈출한다. 사육실 문에 작은 창문이 하나 달려 있는 이유도 사육실 문을 열기 전에 우리 밖에 나와 있는 원숭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탈출한 붉은털원숭이를 도로 우리에 넣고 돌아오는 길인데 원숭이가 또 나왔다는 겁니다. 어떻게 나왔는지 폐쇄회로(CC)TV로 봤더니 사람이 우리를 여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정강진 사육팀장은 이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보였다. 우리는 손으로 문을 누른 뒤 앞으로 밀어야 열리는 형태였는데 원숭이가 똑같이 문을 따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원숭이의 학습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사육사와 원숭이 사이에 벌어지는 ‘두뇌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 팀장은 “주기적으로 우리 문을 여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며 “잠금장치도 이중, 삼중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영장류센터 연구원이 붉은털원숭이를 안고 있다. 붉은털원숭이는 다섯 살 어린이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뛰어나다.
국가영장류센터 연구원이 붉은털원숭이를 안고 있다. 붉은털원숭이는 다섯 살 어린이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뛰어나다.
‘입맛’도 가지각색

탈출한 원숭이를 우리로 돌아가게 할 때는 먹이로 유인한다. 사육사가 원숭이 ‘주식’인 바나나와 사과를 들고 우리에 넣어주는 시늉을 하면 원숭이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육실에서 제공하는 원숭이 먹이는 바나나와 사과가 기본이다. 여기에 제철 과일이 더해진다. 겨울에는 귤, 봄에는 딸기 등을 더하는 식이다. 모든 원숭이에게 제공하는 식단은 같지만 입맛은 제각각이다. 심지어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 원숭이도 있다.

정 팀장은 “원숭이가 살던 지역에 따라 입맛이 다른 것 같다”며 “중국 남방지역인 광저우(廣州)에서 데려온 원숭이는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이보다 북쪽인 쑤저우(蘇州) 원숭이는 사과를 더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또 “특이하게 바나나 껍질만 먹고 과육을 버리는 원숭이도 있다”고 알려줬다.

이곳에는 원숭이만 입을 수 있는 특별한 옷이 있다. 심박 수와 체온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센서가 장착된 ‘몽키 재킷’이다. 실험 과정에서 24시간 동안 원숭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좁은 우리에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원숭이 장난감’도 있다. 공을 주면 사람처럼 장난을 치고 거울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스펀지 안에 땅콩을 박아 놓은 걸 주면 하나씩 빼먹는다.

허 선임연구원은 “가끔 원숭이나 유인원이 우리 안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사람과 너무 비슷해 놀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붉은털원숭이를 수입할 수 있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원숭이를 수출하는 국가에서 영장류를 자원으로 여기며 ‘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연구원은 연구에 필요한 원숭이를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전북 정읍시에 영장류를 번식시키고 사육해 국내에 공급하는 ‘국가영장류자원센터’를 건립 중이다. 이 센터는 2017년 문을 열 예정이다.

허 선임연구원은 “정읍 국가영장류자원센터에서는 원숭이를 가족 단위로 묶어 기르는 등 복지에 더욱 신경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창=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붉은털원숭이#국가영장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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