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 서밋’ 계기… 과학 연구에서의 ‘성차별’ 살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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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협심증은 남성, 뼈엉성증은 여성이 잘 걸린다?
②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 여성에게도 그럴까?
③ 자동차 충돌 시 목뼈 다칠 확률은 남녀가 동일?

협심증은 남성이 주로 걸리고, 뼈엉성증(골다공증)은 여성에게 잘 나타난다. 사무실 적정 온도는 21도다. 자동차 충돌 사고 시 목뼈를 다칠 확률은 남녀가 동일하다. 이들 3가지 사례는 모두 과학적으로 사실일까.

26일부터 3일간 서울 중구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되는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 서밋’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숙경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할 경우 향후 연구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 “실험에 사용되는 세포의 경우 연구자들이 성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차량 충돌 시험에 쓰이는 더미는 남성의 표준 사이즈를 토대로 제작돼 사고 시 여성의 부상 위험 예측은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위쪽). 과학 연구에서 젠더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미국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동물 실험 시 쥐의 성별을 맞추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위키피디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차량 충돌 시험에 쓰이는 더미는 남성의 표준 사이즈를 토대로 제작돼 사고 시 여성의 부상 위험 예측은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위쪽). 과학 연구에서 젠더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미국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동물 실험 시 쥐의 성별을 맞추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위키피디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 쾌적한 실내 온도, 남녀 서로 달라

심장질환은 ‘남성 질환’으로 간주되면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 결과를 토대로 진단과 치료 방식이 정립됐다. 여기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심장 질환을 막아 준다는 1990년대 이론도 한몫했다. 하지만 실제로 협심증은 미국과 유럽 여성의 사망 원인 1위로 꼽힐 만큼 여성 환자가 많다. 페라 레기츠차그로세크 독일 베를린젠더의학연구소 교수는 2011년 “(심장 질환 진단법이 남성에 맞춰져 있어) 여성 심장 질환자의 경우 오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뼈엉성증은 폐경기 여성에게 발생하는 ‘여성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뼈엉성증으로 골반뼈가 부러지는 환자의 3분의 1은 남성이다.

보리스 킹마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박사팀은 미국의 사무실 적정 온도가 남성을 기준으로 정립됐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기후변화’ 3일 자에 발표했다. 1960년대 40대 백인 남성의 신체 대사율을 토대로 사무실 적정 온도를 계산하는 바람에 남성보다 대사율이 낮은 여성은 사무실에서 추위에 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21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반면 여성은 24도를 적정 온도로 받아들였다.

자동차 충돌 시험 결과에도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충돌 시험에서 사용하는 더미(실물과 똑같이 만들어진 실험용 인형)는 남성의 평균 신장과 몸무게를 토대로 제작된 만큼 자동차 사고 시 여성이 부상할 확률은 예상과 다르다. 실제로 자동차 충돌 사고에서 가장 잘 발생하는 목뼈 부상의 경우 여성의 부상 위험이 남성보다 2배 더 높다. 아스트리드 린데르 스웨덴 국립도로교통연구소장은 젠더 서밋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다.

제프리 모길 캐나다 맥길대 의대 교수는 통증 치료 과정에서 수컷 쥐와 암컷 쥐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한다.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14 유럽 젠더서밋’. 젠더서밋은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는 26일부터 서울에서 ‘2015 아태 젠더서밋’이 열린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공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14 유럽 젠더서밋’. 젠더서밋은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는 26일부터 서울에서 ‘2015 아태 젠더서밋’이 열린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공
○ 미 국립보건원, 암수 성비 맞추도록 규정

과학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2009년이다. 론다 시빙거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가 그간 과학 연구에서 남녀의 생리학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게 단초가 됐다.

이숙경 교수는 “2013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포은행에서 판매하는 연구용 세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간 세포의 80%는 성별이 표시돼 있었지만 동물 세포의 90% 이상은 성별 표시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연구 개발에 사용되는 동물의 성비를 맞춰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김성완 한국연구재단 ICT·융합연구단장은 “암컷 쥐는 생리 작용 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수컷 쥐보다 실험 비용이 3∼5배 많이 들어 잘 사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그간 암컷 쥐에 대한 전임상 연구가 소홀했던 만큼 최근 미국 등에서는 암컷 쥐 실험이 진행되는 추세”고 말했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소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표준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 과연 모두를 위한 표준이었는지 생각하며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 서밋#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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