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진단 어려운 희귀질환… 치료 늦어지면 장애로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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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Beauty]다발성경화증
신경에 염증 재발-완화 반복… 치료 늦을수록 장애범위 확대
2차 치료제 보험급여 적용 등 정부, 치료 환경 개선해야

사시력 이상, 보행의 어려움, 감각이상 등이 주 증상인 다발성경화증은 방치하면 장애로 이어져 경제활동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동아일보DB
사시력 이상, 보행의 어려움, 감각이상 등이 주 증상인 다발성경화증은 방치하면 장애로 이어져 경제활동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동아일보DB
박준기(가명·33) 씨는 8년 전 군복무 시절에 일시적으로 다리가 마비된 적이 있다. 별 다른 처치 없이도 며칠 후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후 이런 증상이 몇 번 더 반복되어 정형외과 물리치료 및 한방치료를 받았으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됐다. 검사 결과는 다발성경화증. 현재는 어렵게 구한 직장도 그만뒀고, 보조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박 씨와 같은 병을 가진 직장인 김서현(가명·35) 씨의 경우는 다르다. 김 씨도 8년 전 갑자기 한 쪽 눈이 뿌옇게 보이고 통증을 느꼈다. 이에 안과를 찾았고, 이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약 1년 후 다시 같은 증상을 겪게 된 김 씨는 안과를 찾았다가 의사 추천으로 신경과를 방문했고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았다. 비교적 조기에 진단받은 김 씨는 약간의 시력저하가 후유증으로 남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유지 중이다.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의 말이집과 축삭에 염증이 생겨 말이집이 벗겨지고 축삭이 손상되는 질환을 말한다. 손상 이후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하면서 장애가 축적되는 만성질환이다.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는 “쉽게 말해 다발성경화증은 전선(축삭)을 감싸고 있는 피복(말이집)이 여기 저기 벗겨져 전류(신경 신호)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발성경화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시력 이상, 보행의 어려움, 감각 저하, 이상감각 및 무기력함 등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다른 병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그렇다보니 박 씨의 사례처럼 확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 건강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검진받을 생각을 못 하기 때문이다.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
이 병은 신경에 생긴 염증이 재발과 완화를 반복한다. 이렇게 신경 손상이 계속 쌓이게 되면 결국 장애로 이어진다. 당연히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장애의 정도도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재발은 중추신경계 어떤 부위에도 나타날 수 있고, 이에 따라 장애도 다양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가 남는 범위도 넓어진다.

김호진 교수는 “확진을 받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렇다보니 재발과 장애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신경과를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50%는 발병 15년 후 보행 시 보조가 필요한 정도의 장애를 갖게 된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환자가 감내해야 하는 신체적 부담은 커지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발성경화증은 국내에서 희귀질환으로 분류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다. 조기진단 등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김호진 교수는 “신경 손상이 적은 초기에 재발을 지연시키는 치료를 받음으로써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진행된 다발성경화증 환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4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후유 장애에 대한 육체적 고통 및 사회생활의 제한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의 정도가 심해진 탓에 전체 환자의 32%만이 직장을 갖고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투병 기간이 길수록 장애도 더 진행되어 고용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10년 이상 질환을 앓았던 환자 중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는 11%에 그쳤다.

직장을 갖고 있는 환자의 경우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비교적 경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3분의 1 정도가 일상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환자들 중 63%가 생계뿐 아니라 치료과정 자체에 대한 어려움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은 스스로 약을 주사하면서 일상생활을 한다. 의료인이 아닌 경우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 주사제 보관 문제 등은 적지 않은 불편함과 생활의 제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김호진 교수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과 장애 누적, 사회생활의 제약과 경제난은 정신적 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며 “같은 나이의 일반인보다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의 자살률이 7.5배 높다는 것은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고 덧붙였다.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은 열악한 치료환경에 놓여있다. 다발성경화증은 대체로 젊은 시절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긴 시간 질환을 앓아야 하기 때문에 고령군에서 나타나는 알츠하이머, 뇌중풍(뇌졸중) 등 다른 신경계 질환보다도 의료비용이 더 높은 편이다.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은 치료제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5년간 국내 다발성경화증 치료에는 2가지 주사제만 사용되어 왔다. 지난해 환자들이 좀 더 쉽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여러 신약들이 도입되어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이 다소 확대되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치료제는 모두 1차 치료제다. 1차 치료제를 투여했음에도 치료 효과가 없는, 즉 반응이 떨어지는 환자에게는 2차 치료제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환자들 중에는 2차 치료제는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치료에 엄두를 내지 못한 채 1차 치료제에 계속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다발성경화증 같은 희귀질환에 대한 정부의 급여평가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보험급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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