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넥슨,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9일 06시 40분


엔씨소프트 대표 김택진-넥슨 창업자 겸 NXC 대표 김정주(오른쪽)
엔씨소프트 대표 김택진-넥슨 창업자 겸 NXC 대표 김정주(오른쪽)
■ ‘경영권 분쟁’ 동지에서 적으로

김택진·김정주 대표, 한국게임 태동기 이끌어
2012년 글로벌시장 공략 위해 전략적 협업

넥슨, 경영참가 목적 지분 매입…갈등 불씨
엔씨소프트 대응·3월 주주총회 결과 관심

한국 게임산업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두 축,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일까.

경영참여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대화채널을 열어놓고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꾼 뒤 엔씨소프트와 접촉해 온 넥슨은 주주제안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공세수위를 높였다. 엔씨소프트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일방적인 경영간섭’이라고 비판했다. 한 때 선의의 경쟁자로, 또 동지로 한국 게임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두 회사의 경영권 분쟁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벤처로 시작한 선의의 경쟁자

두 회사는 한국에 PC온라인게임 산업이 태동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선의의 경쟁을 하며 산업의 파이를 키워왔다. 서울대학교 공대 선후배 사이인 김택진(전자공학과 85학번)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컴퓨터공학과 86학번) 넥슨 창업자 겸 NXC 대표는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인사. 김정주 대표는 카이스트 대학원을 다니던 1994년에 홀연 넥슨을 창업하며 일찍 게임사업에 눈을 돌렸다. 대학교 졸업 후 현대전자를 다니던 김택진 대표도 1997년 회사를 그만두고 엔씨소프트를 창업하면서 한국 PC온라인게임의 태동기를 함께했다. 척박한 시장 상황에도 두 회사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등을 내놓으며 사세를 빠르게 확장했다.

주력장르나 사업방향이 달라 두 회사는 서로 크게 부딪히는 일 없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2000년대 한국 게임산업 황금기를 이끌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을 연이어 빅히트 시키며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 게임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발사로 성장했다. 넥슨의 경우 탄탄한 마케팅을 기반으로 국내 최고의 유통사로 자리매김했고, 대규모 인수합병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성공 신화를 썼다.

세계시장 공략 위한 동지로 맞손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두 회사는 2012년 산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빅딜’을 발표한다. 넥슨이 그 해 6월 8045억원에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양사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 협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한국 게임 산업은 외산게임의 공습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130주 넘는 동안 PC방 인기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가 국내를 강타했고, ‘디아블로3’ 등도 출시를 위한 담금질을 하는 등 국내외에서 새 활로를 찾기 어려웠던 시점이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양사는 실제로 글로벌 게임사 EA 등을 놓고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큰 꿈은 실패로 돌아갔다. 양사는 이후에도 ‘마비노기2’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협력을 유지했다.

경영권 분쟁…결국 적으로

동지였던 두 회사 대표들의 친분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해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0.4%를 추가로 사들이며 갈등의 불씨가 켜졌다. 엔씨소프트는 발끈했고, 넥슨은 ‘단순투자’에 불과하다며 진화했다. 하지만 앞서 협업을 하던 게임 개발을 잇달아 중단하는 등 이미 적신호가 켜진 상태여서 긴장감은 고조됐다.

그리고 지난 달 27일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보유 목적을 종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한다고 공시하면서 양사의 갈등은 수면위로 드러났다. 윤송이 사장의 승진 등 앞서 23일 엔씨소프트가 낸 인사가 도화선으로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넥슨은 6일 구체적인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답변 기한을 10일로 못 박는 등 날을 세웠다. 김택진 대표의 재선임은 예외로 뒀지만, 이사선임은 물론 주주명부 공개 등 아군확보를 통한 경영참여 의지를 더 확고히 하는 내용을 담았다. 엔씨소프트는 “주주가치를 우선에 두고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면서도 “일방적 경영의견 제시는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영권 확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두 회사의 기업문화가 매우 이질적이어서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선의의 경쟁자에서, 동지로, 그리고 다시 적으로 등을 돌린 양사 수장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10일 엔씨소프트의 답변 여부와 3월 주주총회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트위터@kimyke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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