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다중인격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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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킬미, 힐미’로 본 ‘다중인격’

괴팍함과 온화함을 넘나드는 이중인격 환자 구서진(현빈·왼쪽)이 등장하는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한 장면. ‘킬미, 힐미’의 차도현(지성·오른쪽)은 7개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전문가들은 다중인격이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장치일 뿐 실제로는 진단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팬 엔터테인먼트·SBS 제공
괴팍함과 온화함을 넘나드는 이중인격 환자 구서진(현빈·왼쪽)이 등장하는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한 장면. ‘킬미, 힐미’의 차도현(지성·오른쪽)은 7개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전문가들은 다중인격이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장치일 뿐 실제로는 진단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팬 엔터테인먼트·SBS 제공
직위를 이용한 ‘갑질’이 몸에 밴, 오만하고 괴팍한 원더랜드 상무 구서진(현빈). 원더랜드 직원인 장하나(한지민)가 위험에 처하자 구서진이 그녀를 구한다. 그런데 사실 장하나를 구한 건 부드럽고 따뜻한, 구서진의 또 다른 인격 ‘로빈’이었다. 이중인격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또 다른 드라마 ‘킬미, 힐미’에는 이중인격도 모자라 7중 인격이 등장한다. 재벌 3세 남자 주인공 차도현(지성)은 폭력적인 성향의 ‘신세기’, 여수 출신의 40대 ‘페리 박’, 17세 남학생 ‘안요섭’, 7세 여아 ‘나나’ 등 나이부터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7중 생활’을 한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이런 다중인격을 ‘해리성(解離性) 정체 장애’라고 부른다.

○ 이중인격부터 ‘100중 인격’까지 가능

극 중 차도현이 7중 인격을 갖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겪은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과거의 기억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버리고 타인의 정체성을 얻은 셈이다.

정신의학전문의인 김성찬 서울탑마음클리닉 원장은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피하고 싶을 때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라며 “특정 사고나 사건만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에 비해 해리성 정체 장애는 매우 극단적이고 희귀한 형태이며 현실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는 특별한 외부 자극이 없어도 인격이 시시때때로 바뀔 수 있다. 보통 주된 인격이 존재하며 나머지 인격은 이와 상반된 성격인 경우가 많다. 김 원장은 “다른 인격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우리’라고 칭하며 다른 인격까지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최대 몇 개의 인격까지 보유할 수 있을까. 1977년 성폭행과 무장강도 등으로 체포된 미국의 빌리 밀리건은 이듬해 해리성 정체 장애가 있다고 판단돼 무죄를 선고받으며 유명해졌다. 당시 확인된 밀리건의 인격은 모두 24개였다. 밀리건의 사례는 드라마에서 구서진의 주치의인 강희애(신은정)의 입을 통해서도 자세히 언급된다.

영국에서는 올해 55세가 된 여성인 킴 노블이 14세부터 100개 이상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됐다. 노블은 2011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며 “하루에 서너 번 인격이 바뀐다”고 말했다.

○ 편도체와 해마 작은 게 원인일 수도

해리성 정체 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뇌의 해부학적인 차이에 주목한다. 네덜란드 루돌프 마그누스 연구소, 미국 에모리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06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미국정신의학저널’에 해리성 정체 장애가 있는 사람의 해마와 편도체의 크기가 정상인에 비해 각각 19.6%, 31.6%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편도체가 제거된 동물은 외부에서 위협을 받아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해 바로 전에 한 일도 잊어버린다. 하지만 개인별 뇌 구조와 해리성 정체 장애 사이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어서 이를 진단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쪽잠 이론’을 제기한 학자도 있다. 스티븐 리 미국 빙엄턴대 교수팀은 2012년 미국심리과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잠을 한 번에 푹 자지 않고 여러 차례 나눠 자는 쪽잠이 해리성 정체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린 교수는 “나쁜 기억이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기억이 훼손될 수 있고 해리성 정체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중인격이 치료를 통해 하나의 인격으로 합쳐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김 원장은 “해리성 정체 장애는 치료에만 수 년 걸리고 예후도 좋지 않은 편”이라며 “빌리 밀리건은 완치가 됐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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