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일하면 40kg 철판도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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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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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기술硏, 조선소 근로자용 ‘입는 로봇’ 개발

“힘들이지 않고 쌀가마니 하나 정도는 번쩍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한 번쯤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산업 현장에 있는 근로자들의 생존과도 관련돼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최근 국내 한 연구기관이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한 번 입기만 하면 무거운 자재나 공구를 손쉽게 옮길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 현장 근로자 의견 반영해 개발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경기지역본부 장재호 선임연구원팀은 1년 6개월간 18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산업용 입는 로봇 ‘하이퍼2-i’를 개발했다.

이 로봇을 입게 되면 40kg 정도의 짐은 가뿐히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자재가 쌓여 있는 울퉁불퉁한 조선소 곳곳을 다닐 수 있다. 또 머리 위에는 크레인처럼 생긴 갈고리가 붙어 있어, 짐을 나르거나 혼자서 선박 표면에 무거운 금속 부품을 용접해 붙일 수도 있다.

이번에 개발된 입는 로봇의 무게는 약 30kg.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일단 착용하면 로봇이 모든 하중을 받쳐 주기 때문에 짐을 들고 오래 걸어도 힘들지 않다. 내장된 배터리를 이용하면 4시간가량 움직일 수 있지만, 전선으로 전원을 연결한다면 하루 종일 작동할 수 있다.

연구진은 국내 한 조선소를 찾아 현장 근로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이 로봇을 만들게 됐다. 조선소 현장에선 무게 30∼40kg 정도의 철판이나 배관 같은 것은 사람이 직접 들고 나르는 경우가 많다. 또 선박 표면에 철판이나 쇠로 만든 여러 기계장치를 용접해 붙이는 작업도 많은데, 한 사람이 손으로 용접할 물건을 잡고 있으면 옆에서 다른 사람이 용접작업을 하는 등 번거롭기도 하고 인력도 많이 필요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현장 근로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작업자들의 작업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찍어 분석하고 로봇의 제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로봇을 만드는 모든 과정마다 조선소를 찾아 현장 근로자들의 의견을 듣고 다시 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 인간동작 정밀 분석… 착용도 편해

사실 이 작업용 로봇을 개발한 연구진은 2010년 군사용 입는 로봇 ‘하이퍼1’을 개발했다. 그 후 매년 진일보한 로봇을 선보이고 있는데, 산업용 입는 로봇을 개발한 나라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다. 사실 입는 로봇은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 정도만 만들고 있는데, 미국은 주로 군사용 입는 로봇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 연구용으로 개발한 하이퍼1은 사람과 로봇의 동작을 정확히 일치시키기 위해 ‘압력감지’ 방식을 썼다. 신발, 허리, 발목에 25개의 압력감지 센서가 붙어 있었다. 조작하기 까다롭고, 오차도 많았다.

연구팀은 2011년부터 로봇의 제어 방법을 ‘버추얼 토크 컨트롤’ 방식으로 바꾸었다. 로봇의 등에 들어 있는 컴퓨터가 무릎과 고관절의 각도를 감지한 다음, 이 각도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려는지 판단하고 힘을 보내 주는 방식이다.

이번에 개발된 하이퍼2-i는 건설용 크레인이나 굴착기 등에 주로 쓰는 ‘유압식 액추에이터’로 힘을 낸다. 허벅지 앞뒤로 하나씩 모두 4개의 유압식 액추에이터가 붙어 있어 사람의 다리 근육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것. 전기모터 방식에 비해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정밀한 작업을 할 때는 제어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장재호 연구원은 “매번 새로운 로봇을 개발할 때마다 진일보한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로봇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동작도 좀 더 세밀해지면서 날렵해지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군사·산업용으로 쓸 수 있는 다양한 로봇을 계속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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