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정호’ 印소외지역 지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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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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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갠지스강 범람하는 여의도 면적 18배 ‘낙타섬’
최하층민 10만명 살아도 아직 정식 지도조차 없어 정부 지원 없고 환경 열악
한국기술교대 대학생 4명 폭염 뚫고 현지측량 나서… 이제는 구글맵서 검색 가능

인도 동북부 비하르 주 파트나 시에 있는 ‘낙타’ 섬은 올해 7월까지 ‘구글 지도’에서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위쪽 사진). 한국기술교육대 팀이 세부 지도를 작성한 뒤부터 도로와 마을의 위치와 지명 등이 표시된다(아래쪽 사진). 구글 지도 제공
인도 동북부 비하르 주 파트나 시에 있는 ‘낙타’ 섬은 올해 7월까지 ‘구글 지도’에서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위쪽 사진). 한국기술교육대 팀이 세부 지도를 작성한 뒤부터 도로와 마을의 위치와 지명 등이 표시된다(아래쪽 사진). 구글 지도 제공
올해 6월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한국기술교육대 공학교육혁신센터에 인도 동북부 비하르 주에 사는 이영길 선교사가 찾아와 “지도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인도 비하르 주 파트나 시에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18배(150km²)에 이르는 ‘낙타(Nakta)’ 섬이 있는데, 해마다 갠지스 강이 범람해 피해가 심각하다. 10만여 명이 살고 있지만 주민 대부분이 최하층민이어서인지 정부의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민간 차원에서 복구하려고 해도 실태 파악을 위한 지도마저 없다.

이 선교사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프로젝트(GEP) 3기생’들.

며칠간의 사전 조사를 끝낸 뒤 메카트로닉스공학부 3학년 강성휘(23), 이용림(23), 김가은(21), 정채식 씨(18) 등 4명으로 이뤄진 ‘관측자’ 팀이 꾸려졌다.

한국기술교육대 이용림, 정채식, 김가은, 강성휘 씨(왼쪽부터)로 이뤄진 ‘관측자 팀’은 소외된 인도 지역을 방문해 세부 지도를 작성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한국기술교육대 이용림, 정채식, 김가은, 강성휘 씨(왼쪽부터)로 이뤄진 ‘관측자 팀’은 소외된 인도 지역을 방문해 세부 지도를 작성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관측자 팀은 세계적으로 지리 정보가 구체적으로 담긴 지도는 3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리 정보가 부족하면 재해지역 구호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체계적인 지역 개발도 힘들다는 현실을 깨달은 이들은 본격적인 지도 만들기에 들어갔다.

먼저 구글 지도에 ‘Nakta’라고 검색해 봤다. 위성사진만 있을 뿐 정말 단 하나의 정보도 없었다. 스마트폰에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을 이용하자는 이용림 씨의 제안으로, 움직인 거리와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찾아 우선 학교 주변에서 시연을 했다.

관측자 팀은 낙타 섬의 위성사진을 전지 크기로 인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인도로 갔고 7월 11일 낙타 섬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차로 옮겨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마을 입구까지 간 뒤 구석구석 시설물을 파악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이들이 첫날 움직인 거리는 총 18km.

40도를 넘나드는 인도의 여름 날씨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쉴 수도 없었다. 열대성 폭우로 더위가 가실라치면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면서 길은 엉망진창이 됐다. 배수시설이 없으니 떠다니는 배설물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여기에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 몇몇 마을에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고,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대며 따라다녀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오면 하루 동안 얻은 정보를 컴퓨터로 내려받은 뒤 준비한 위성사진 위에 하나하나 기록했다. 먼저 길과 마을 경계를 그리고 마을회관과 학교, 사원 등의 위치를 표시했다. 또 이 정보들은 ‘구글맵 메이커’ 서비스를 통해 구글 지도에 바로 등록했다. 이렇게 5일 동안 총 12개 마을의 지도를 그린 덕분에 이제는 누구나 구글 지도에서 ‘Nakta’를 검색하면 도로와 마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강성휘 씨가 인도 현지 마을 대표에게 마을의 상황과 시설 정보를 듣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강성휘 씨가 인도 현지 마을 대표에게 마을의 상황과 시설 정보를 듣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관측자 팀이 그린 지도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섬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일정이 빠듯해 전체를 담지는 못했다. 대신 이들은 지도 작성 작업에 현지 대학생을 동참시켰고 모든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현지인들이 스스로 고향 땅의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강성휘 씨는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은 작은 움직임이 소외된 지역을 개발하고 정보의 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이들의 활동은 이달 9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제3회 적정기술 국제콘퍼런스’에서 적정기술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청년 김정호#인도#소외지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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