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한다니…” 뿔난 국내 공대생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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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못 알아듣는 영어강의”…“대학원 갔더니 잔심부름만 시켜”
전국 8개大 재학생 집단토론

“우리도 할 말 많습니다.” 공학교육 토론회에 모인 공대생들은 영어 강의, 공학인증제도, 대학 연구실 문화, 강의 평가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2차례 열린 토론에는 서울대, 고려대, 포스텍 등 국내 8개 대학에서 4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우리도 할 말 많습니다.” 공학교육 토론회에 모인 공대생들은 영어 강의, 공학인증제도, 대학 연구실 문화, 강의 평가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2차례 열린 토론에는 서울대, 고려대, 포스텍 등 국내 8개 대학에서 4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영어 강의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학생들도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아요.”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갔더니 잔심부름만 하고 있습니다.”

공대생들이 뿔났다. 학습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요즘 공대생들은 공부 안 한다”고 하는 사회적 비난에 반론을 제기했다.

공학기술인 단체인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런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10, 11월 두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국내 8개 대학 공대생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현재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영어강의, 공학인증 제도, 대학 연구실 문화, 강의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학생들은 ‘영어 강의’에 대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많은 대학은 국제화와 대학평가를 이유로 영어 강의 비중을 늘렸다. 문제는 원어민도 이해하기 힘든 영어 강의 수준이다. 지방 명문대 공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외국인 학생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강의가 많은데도 밖에서는 학생들의 능력만 탓한다”며 “영어 강의를 위한 사전 준비가 철저했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결국 부실한 영어 강의 때문에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고 학생들은 지적했다.

‘공학교육인증제’에 대한 불만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실력 있는 공학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수업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2001년에 도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의 혁신보다는 인증을 받기 위해 과목의 명칭만 바꾸는 곳이 많다는 게 학생들의 지적이다. 토론회에 참여한 서울 한 사립대 학생은 “학교가 공학교육인증을 받기 위해 실험하고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설계’ 수업을 도입했는데 기존 실험 과목을 이름만 바꿨다“고 말했다. 또 공대생의 교양을 높인다며 ‘인문학’ ‘경영학’ ‘글쓰기’ 과목도 도입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생들의 볼멘소리도 나왔다. 군대식의 경직된 연구실 분위기에서 연구보다는 잡다한 행정업무와 잔심부름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장인은 “미국의 경우 석사과정 학생에게 잡무나 연구제안서 작성 등은 일절 시키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한양대 부총장)에게 전달했다. 권 부회장은 “학교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4, 25일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2011 공학교육 학술대회’에서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과 즉석 면담을 한 10여 명의 대학생도 공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학생은 자신이 공업고등학교(현재 마이스터고)를 나와 전문대를 거쳐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한 뒤 전자공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라고 소개하면서 “4년제 대학의 실험장비라는 것이 공고보다 못하고 이 같은 현상은 지방대일수록 더 심한데 어떻게 기업이 원하는 현장형 인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공학교육 현실이 이 정도인가란 생각이 들었다”며 “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서귀포=유용하 동아사이언스 기자 edmo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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