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소속감 확인하려 유포… 진실 여부는 관심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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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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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루머 전문가 디폰조 로체스터공대 교수

“괴담을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들에게 괴담의 진실 여부는 주요 관심사가 아닙니다. 괴담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소속감을 표현하는 것이 주목적이죠. 자신이 특정 사회그룹에 속해 있다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루머 전문가인 니컬러스 디폰조 뉴욕 로체스터공대 심리학과 교수(52·사진)는 16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정치적 사회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괴담 확산에 적극 가담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퍼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괴담들은 ‘메아리방(echo chamber)’에 갇혀 있다”며 “외부와 단절된 채 트위터,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끼리 서로 비슷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괴담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도 9·11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강타 등 사회적 위기 때 근거 없는 소문들이 급속하게 퍼졌다”며 “사람들은 괴담과 루머에라도 의지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고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느 사회건 젊은층의 불안심리가 클 때 괴담은 더 빨리 퍼져 나간다”며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능한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괴담과 루머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퍼 나른다”고 말했다. 실업과 경기침체로 젊은이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지금 시점이 미국에서도 괴담이 생겨나기 좋은 때라는 것이다.

디폰조 교수는 미국 루머 연구에서 인정받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최근 국립과학재단(NSF)과 공동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한 루머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저서 ‘루머심리학’은 2006년 미국의 권위 있는 서평단체인 포워드북 선정 ‘올해의 책’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FTA 괴담이 큰 파급력을 가지는 것에 대해 “FTA와 관련된 무역, 소송 이슈들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비전문가들은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난도의 이해력이 요구되는 이슈에 대해 단순한 설명을 제공하는 괴담이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디폰조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괴담에 잘 대처한 사례로 꼽았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출생자가 아니고 이슬람교도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졌을 때 그는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그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등 초기에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괴담은 일단 유포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믿을 만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초기에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파될 때 막는 것이 중요하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 중립적 성향의 사실 확인 기관인 ‘팩트체커’ 같은 제3자에게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해명의 신뢰도를 높였다.

디폰조 교수는 “신뢰도에 금이 간 정부는 아무리 트위터나 인터넷에 들어가 괴담에 대한 해명에 나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며 심지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뒤로 물러서고 신뢰와 권위를 갖춘 제3자에게 맡겨 수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과 트위터가 괴담의 유포지이기도 하지만 괴담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며 “지난해 칠레 강진 당시 정부의 부실대응에 대한 각종 괴담이 퍼졌을 때 이를 반박하는 의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전파됐다”고 설명했다.

디폰조 교수는 “이념적으로 대립된 사회일수록 괴담에 취약하다”며 “위기 때마다 한국에서 급속하게 확산되는 괴담은 사회적 에너지를 갉아먹는 매우 비생산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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