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言中물증… “말속에 숨은 범죄단서 찾아라” 檢, 진술분석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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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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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찰청이 진술분석(범죄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한 심리분석)을 활성화하고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을 도입하는 등 과학수사 기법을 한 단계 더 높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범죄자의 유전자(DNA) 분석과 마약 감정에 치중해 왔던 과학수사가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대검찰청 소속 과학수사센터인 디지털포렌식센터(DFC)는 6일 일선 지검·지청별로 부장검사를 과학수사책임관으로 임명해 과학수사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 공조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또 최근 급증하는 공공전산망 해킹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막기 위한 컨트롤타워인 ‘사이버범죄수사단’도 출범시켰다. 》
○ 심리분석으로 범인 잡아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입사 면접을 위해 만난 여성 A 씨(30)를 술에 취하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무역업체 사장 김모 씨(51)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법원 판단이 달라진 데는 DFC의 진술분석 결과가 큰 역할을 했다. 1심은 “김 씨가 A 씨의 집까지 들어와 A 씨가 구토하자 물을 가져다줬고 A 씨가 직접 현관문을 잠갔다”며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에 보내진 진술분석 결과는 달랐다. DFC는 “김 씨가 화간(和姦)이라면 당연히 기억해야 할 성행위 시 대화나 정황, A 씨 집에 따라 들어가거나 침대 옆으로 가게 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김 씨가 만취한 A 씨를 강간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진술분석은 무고(誣告)를 가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9월 검찰은 “엄마 친구인 신모 씨(41)가 집에 놀러와 함께 음식을 먹다가 가슴과 음부 주변을 만졌다”는 B양(6)의 진술을 바탕으로 신 씨를 아동성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DFC 김미영 진술분석관은 장시간 면담을 통해 B 양이 음식을 먹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추행 사실에 대해선 “가슴 등을 만졌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고통이나 부끄러움 등 정서적 반응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신 씨는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지난해 9월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DFC가 실시한 진술분석은 모두 507건. DFC는 일선 지검에서 강력 및 성폭력사건에 대한 진술분석 의뢰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 심리학 석·박사급 2명을 진술분석관으로 새로 채용했다. 법원이 진술분석 결과에 대한 증거능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에 따라 진술분석을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 곤충도 범인을 밝힐 수 있어


미국 범죄수사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에 나오는 길 그리섬 반장은 법곤충학자다. 법곤충학이란 시신에 꼬인 곤충들을 보고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해됐는지를 밝히는 법의학의 한 분야다. 시신에 몰려든 파리와 구더기 크기, 딱정벌레와 기생벌 등 특정 곤충의 유무로 사망시간을 추정한다. 또 시신이 어디에서 옮겨졌는지 등도 밝혀낼 수 있다. 미국 등에선 특정 곤충의 서식지와 생태 등에 따라 곤충 유전자가 옷에 묻은 강력·성폭력 사건 피의자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국내에선 관련 연구가 미진한 상태다.

DFC는 최근 7기 과학수사자문위원 28명을 새로 위촉하며 곤충 등 동물의 DNA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포함시켰다. 김 교수는 “곤충의 DNA를 이용해 범죄정황 등을 파악하는 연구는 여전히 초기 단계”라며 “특정 지역이나 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 DNA 정보를 바탕으로 범죄 실체를 좀 더 효과적으로 밝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DFC는 11일 일선 지검·지청의 과학수사책임관을 대상으로 증거물 조작 여부, 사망시간 추정 등에 대한 과학수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정확히 알리는 워크숍을 열기로 했다. 이들은 지검·지청별로 과학수사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 DFC와 긴밀히 협의하고 각 지검·지청의 난제(難題)사건에 대해 과학수사기법을 조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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